계절병

by 다섯손가락

감기로 시작해서 코로나를 지나고 있다. 머잖아 회복으로 끝날 것이다. 가족의 강력한 연대는 이럴 때 드러난다. 코로나도 같이. 첫 감염자가 타인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게다. 완전 회복될 때까지 그 잔소리를 어떻게 들어 넘기겠는가. 평소에 건강관리, 청결유지를 안 해서 그렇다느니 온갖 훈계를 다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최초 감염자는 내가 아니다. 그렇게 큰소리 잘치는 바로 그분이시다. 2차 감염자인 게 이토록 감사할 줄이야. 감사, 감사, 감사를 되뇌이며 지난 사흘을 지냈다. 그의 곁에서.


아픈 중에도 바깥 바람은 쐬어야 한다. 살아있는 자의 본능이다. 동물의 몸으로 살고 있으니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황사가 온다고 일기예보를 하지만 바이러스로 눅진한 몸은 따가운 햇살이 좋다. 자력으로 이기지 못하니 천연 치료제를 끌어다 내 몸에 쏟아부어야 했다. 정말이지 보석처럼 내리는 햇살비 속을 우산도 양산도 없이 달렸다.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하니 고사리는 이미 피고 있다. 지난주말은 누워서 지냈으니 못 왔고, 그 앞주는 철이른 고사리라며 외치는 그분 때문에 스쳐지났다. 사월 고사리도 두 번을 놓쳤으니 잎자루로 피어날 수밖에. 작년 같으면 내리 5주를 고사리밭에서 주말을 살았을 것이다. 한 번 지날 때마다 두 솥을 데쳐낼 정도이니 일년 동안 쓸 고사리나물은 넘쳐난다.


이미 누가 지나갔는지 곳곳에 어린 고사리순이 꺾여 있다. 목만 댕강 꺾어간 흔적이 처량하기도 하고 어린 고사리의 생애가 덧없기도 하다. 움쑥처럼 웃자라 새로 피어오르는 고사리는 그래도 낫다. 다른 잎자루가 있으니 생명이 끝난 건 아니다. 양팔로 펼쳐진 잎사귀 뒤로 포자를 만들어 번식하고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세력 확장까지 하면서.


큰집 산소 가장자리 고사리밭을 지나니 산나물도 듬성듬성 눈에 띈다. 일차 고사리를 한 바퀴 수확해 담고 다시 한 바퀴를 돌며 산나물을 뜯는다. 장갑이라도 끼고 채취하면 손이 곱게 보호받고 호강을 누릴 터인데 주인을 잘못 만나 맨손이다. 거무스름한 잎샛물을 검지와 중지에 물들이며 똑똑 봄나물을 얻는다. 고사리를 꺾을 때는,


"고사리는 허리를 푹 수그리고 낮은 자세로 봐야 보인다."

"앞 사람이 꺾고 지나간 자리도 다시 보모 고사리가 또 있다."

"그러니 고사리도 주인따라 가는기라. 욕심낼 필요없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고사리 내려갈 때 보았네."


엄마 목소리가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다니는 듯하다.


산나물을 뜯으면서도 작년에 모종을 옮겼던 기억이 떠오르고 조상님들 지혜가 읽힌다. 우리 조상님들은 채소 식물도 생명체로 아끼셨던 마음이 보인다. 뿌리째 뽑아서 정리하지 않고 애초 밭에서부터 필요한 부분만 꺾고 뜯어서 사용했다. 고사리도 연한 우듬지만 꺾고 산나물도 어린잎과 뿌리는 두고 모두 성장한 큰 잎만 취한다. 그러니 우선 당장 쉬운 대로 편하게 채취하지 않고 내년을, 다음을 기약하며 뿌리와 줄기를 남겨두는 것이다. 봄나물은 그랬다.


638489979422086243_0.jpg 고사리 데치기


집에 와서 데쳐내니 전골 냄비로 두 번이다. 작은 냉온백 한 가방인데 펼펴 장만하려니 많다. 작년 같으면 5주 동안 할 일을 올해는 3주 정도면 되겠다. 건조기로 3주 동안 말리면 12봉지는 나오겠다. 한 번에 두 봉지씩 나물을 해도 여섯 번이나 상차림을 할 수 있다. 넉넉하다. 아니, 충분하고, 고사리 건채가 없다던 큰집 올케언니랑도 나눌 수 있는 분량이다. 동물 본능과 생존 본능이 이룬 쾌거다. 햇살 샤워.


천연 치료제는 군불을 지피지 않아도 등 뒤에서 후끈후끈 덥다. 찜질방이 따로 없다. 필요도 없다. 햇볕 한증막이 온 들판 가득이니 그렇다. 해마다 봄이면 조상 대대로 이 들녘을 타고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 수백 년 유전자와 엄마 유전자까지 더해졌으니 봄햇살을 찾아나서는 이몸의 이끌림은 고향산천의 부르심이요, 생태계의 조화다. 이 균형을 지키지 않았으니 코로나가 덮쳤을 게다. 그러니 봄에 산중턱을 타고 다니는 이 짓은 몸으로 몸으로 흘러 전해진 유서깊은 계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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