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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Apr 24. 2024

1-7. 아빠 빵빵, 아빠 빵빵

유년의 나에게 쓰는 편지

어린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게 처음이구나. 세월을 몇 바퀴 되돌리면 많은 추억이 있을텐데 여태껏 왜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구나.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는지, 수면 위로 떠올리기도 힘들어서 잊고 지냈는지...


몇 살쯤일까? 세 살이었던가? 안채 마루 밑 축담과 큰 마당 사이에 바위가 하나 있어. 검푸른 빛을 띠는 제법 큰 바위가 있었지. 여기저기 산 능선처럼 생긴 뾰족뾰족한 봉우리도 있고. 너는 그 바위를 큰 산이라고 생각했지. 마당에서 놀다가도 그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기를 좋아했지. 처음엔 그 바위가 얼마나 높은지 위쪽에서 미끄럼만 타고 기어오르는 건 엄두도 안 났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높은 돌산을 아래에서 기어올라 정복하려고 도전을 시작한 거야. 처음엔 계속 미끄러졌어. 아무리 기어올라도 무릎이 까이고 미끄러지기만 했는데 딱 한 번, 그 딱 한 번의 성공이 다시 도전하게 만들었지. 


그날 이후로 매일 도전했어. 미끄러져도 그 한 번의 성공을 기억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 아마도 옆에서 엄마가 계속 응원했을 거야. 그땐 그냥 엄마가 도전을 독려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뜻이 있었다는 걸 요즘 알았어. 어쩌면 그때도 눈치챘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빠가 없응께 아아도 거기서 놀지를 않네...”


라며 웅얼거리던 엄마 목소리가 들려. 그 큰마당은 아빠가 대빗자루로 비질을 하던 곳이야. 저녁 무렵이나 아침이면 아빠가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시작하면서 마당을 깨끗이 쓸었지. 그 풍경이 엄마는 그리웠던 거야.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아린 눈으로 바라보며 어린 딸도 거기서 놀지 않자 더 서운하고 아프셨던 게지. 그래서 어린 나에게 계속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또렷이 기억하고 알아차리게 되는구나. 


결국엔 그 한 번의 성공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지. 그 뒷날도, 다음 날도 계속 성공의 횟수는 늘어가고 정복의 쾌감도 증폭되었지. 그게 어릴 적에 맛본 최초의 성취감이 아니었나 싶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혼자서 이루어낸 승리감. 그때 그 바위산에 도전한 너를 내 인생 최고로 칭찬하고 싶어. 계속 도전한 어린 너를 내 인생의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어. 고마워. 그 시절 네가 있어서. 


차츰 나이가 들면서 그 바위는 계속 작아져서 그 놀이도 시들해졌어. 나중에는 한두 걸음에 오를 수 있는 계단 두세 개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바윗덩이일 뿐이었지. 제법 커서 바라본 푸른 바위가 어찌나 작고 초라해 보이던지... 그렇지만 그 어리고 어린 시절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이었어. 검푸른 바위산. 유년의 안나푸르나. 너도 기억하지? 그러니깐 그 끊임없었던 최초의 도전과 최고의 승리감을 절대 잊어선 안 돼. 알았지?!


하나 더 생각나는 장면이 있구나. 우리 집 대문채에는 왼쪽엔 재래식 변소가 남자용, 여자용으로 검지손가락 그림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옆 칸엔 아궁이 재를 모아서 쌓아두던 헛간이 있었지. 대문 오른쪽으로는 콩, 깨, 씨앗을 보관하던 작은 고방이 있고 그 위로는 공루가 있었구나. 공루는 어린 네가 놀기에 적당히 넓은 공간이었고 안쪽에는 나무판이 쌓여 있었지.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관을 짤 나무라면서 소중히 보관했었지. 그땐 그런 것도 미리미리 준비했나 보다. 


공루에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타야만 했지. 다섯 칸쯤 되었나? 편편하면서도 완만하고 널찍한 그 사다리를 넌 좋아했지. 첫 칸은 의자처럼 앉아서 쉬기도 했던 나무 계단. 아주 어릴 적엔 혼자서 못 올라가니 어른들이 올려 주어야만 가능했지. 그것도 그 큰 바위산처럼 한 칸씩 한 칸씩 도전하며 나중에는 혼자 올랐던 기억이 나. 어려서 못 올라갈 때면 일꾼 아재나 할아버지가 도와주셨어. 바로 건너편에 네모진 화단과 뒷집에서 내려와 아랫집으로 흐르는 또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사랑채가 있었으니깐. 


주로 저녁 무렵에 올라가곤 했지. 엄마는 정지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어린 너는 아장아장 걸어서 그 공루로 갔어. 그것도 엄마가 말씀하셔서 그랬을 거야. 


“주야, 저기 공루에 가 봐라. 아빠가 빨간 버스 타고 오시는가 가 봐라...”


사다리 앞에 앉으면 누군가 와서 올려 주었어. 그 일은 매일 일과처럼 했지. 난간 끝에 서면 멀리 떡곡 고개가 훤히 보이거든. 고개 너머로는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황톳길로 훤히 드러나지. 빨간 버스가 뿌연 먼지를 꼬리에 달고 넘어오면 공루 끄트머리에 오똑 서서


 “아빠 빵빵~, 아빠 빵빵~”


을 외치곤 했지. 부산 갔다던 그 아빠가 타고 올 버스가 보이면 눈 안 가득 버스만 가득 채운 채 그렇게 외쳤어.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 안 보여도 


“아빠 빵빵, 아빠 빵빵”


을 동네가 떠나가도록 외쳤지. 


버스는 수없이 오고, 수없이 많은 날이 지나도 아빠는 오지 않았어. 그런 날이 계속되자 공루에 올라가서 떡곡 고개만 하염없이 눈이 빠져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어린아이 네가 보이는구나. 세 살 된 어린 너에게, 이십일 개월 된 어린 너에게 오십오 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빠는 오지 않는다고 말할까. 아빠는 그만 찾으라고 말까. 동네 사람들이 다 울음바다가 되니까 그만하라고 그럴까. 아빠는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말해줄까. 


아무리 찾아도 해줄 말을 못 찾겠구나. 그냥 토닥토닥 안아 주고 싶구나. 아빠 대신 한없이 안아 주고 싶구나. 꼬오옥. 그리고 말을 한다면, 아빠가 가까이 없어도 엄마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아빠 사랑을 조금씩 나눈 다른 가족들한테서 그 사랑을 느끼며 살아라고. 지금은 힘들어도 시간이 많이 많이 아주 많이 흐르면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너를 귀애하던 그 아빠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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