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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Apr 25. 2024

엄마의 음식 1.

닭고기 간장 조림

탁 탁 탁탁탁 탁


금자 씨는 도마소리가 늘 경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리듬엔 묵직한 진심이 실려 있었고, 울림엔 언제나 정성이 배여 있었다. 그런 마음이 담긴 엄마 음식 중 가장 입맛을 사로잡은 녀석은 닭고기 간장 조림이다. 엄마는 특별한 날이나 행사엔 항상 이 음식을 마련하셨다. 시골에서는 닭장에 닭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고 도시로 이사 온 이후에도 가까운 시장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시집살이에서 제사나 생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차린 음식이기에 더욱 그랬다. 특별한 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면 나는 이 요리를 하고 싶다.


시골 제삿날이면 닭장은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난리통이 된다. 닭장 안에서 동서남북으로 푸드덕거리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할머니는 의기양양하게 실한 암탉 날개를 움켜쥐고 닭장문을 나선다. 닭 모가지를 비틀고 낫이나 칼로 목을 가른 후 핏물을 빼기 위해 장작더미에 척 걸어 둔다. 그 사이 아궁이 솥에서는 물이 펄펄 끓고 있다. 핏물이 웬만큼 빠지면 뜨거운 물을 끼얹어서 털을 숭숭 뽑는다. 털이 뽑힌 자국마다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다. 털이 다 정리되고 나면 도마 위에 생닭을 착 올린다. 


금방 숫돌에서 쓱쓱 갈았던 시커멓고 두꺼운 무쇠 식칼이 등장한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내려쳐서 닭의 모가지를 먼저 싹둑 자른다. 그러곤 닭 두 다리를 쩍 벌리고 바로 눕혀서 배를 단번에 가른다. 할머니는 숙련된 외과 의사처럼 스윽 한 번만 스쳐도 깔끔하게 배를 갈랐다. 손을 넣어 한 바퀴 휘돌리면 내장이 한 다발로 나왔다. 거기에는 암탉이 품은 노랗거나 빠알간 알들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혀 줄줄이 나왔다. 알을 낳기 전의 것은 색깔이 거의 하얬고, 중간 것은 노랬다. 아주 작은 것은 짙은 주황이었다. 황금색이 제일 많았다. 이것들은 정말 포도알처럼 동그랗고 콩처럼 작았다. 


꺼낸 알덩이와 내장은 깔끔히 정리해 둔다. 나중에 무와 대파, 마늘을 넣고 국을 끓여 닭 내장탕을 만든다. 이 절차를 할머니가 하셨으니 가장 좋아하시는 닭똥집(모래주머니)은 할머니 차지다. 할머니는 닭똥집을 반으로 가르고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안에 있는 얇은 막을 주욱 벗기면 속살이 바알갛게 드러난다. 소금으로 빡빡 문질러 깨끗이 씻는다. 그 자리에서 도마 위에 육회로 썰어서 참기름과 꽃소금에 찍어서 드시는 호사를 누리신다. 일명 ’닭똥집 육회‘다.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절대 드시지 않고 할머니만 즐기는 호사다. 틀니를 딸깍거리며 쫄깃쫄깃 닭똥집 회를 혼자 드셨다. 닭을 장만한 자에게 주는 당연한 훈장이라는 듯이. 


할머니가 정갈하게 손질해주신 생닭을 받아 엄마는 부엌에서 간단히 간을 하고 아궁이 솥에서 삶는다.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 후 찬물에 헹군 후 몇 가지 양념을 넣고 조린다. 제사 음식에는 마늘과 고춧가루를 쓰지 않으므로 간단히 간장과 설탕, 참기름, 깨소금 정도만 사용한다. 닭고기 간장 조림이 완성될 시점이면 그 깊고 달콤한 육즙의 향은 온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사랑에 계신 할아버지도, 일꾼 아재들도, 나도, 우리 집 복실이도, 야옹이도 그 닭고기 향에 취해 혼을 잃고 만다. 


닭고기 간장 조림

엄마가 만든 음식 중에는 제사 음식도 빠지지 않는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는 그 많은 제사 음식 중에서 유난히 닭다리가 좋았다. 제례 후 음복할 때에도 항상 닭다리를 쟁취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철상~~~!“이라는 선언을 들으면 어른들 사이를 재빨리 비집고 쪼르르 달려 들어가 닭다리를 얼른 집었다. 그 쟁탈전에서 성공하면 승자의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오동통통 살이 푸짐하고 연갈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달콤짭쪼름한 그 닭고기 맛은 음복 음식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각에도. 


이러니 특별한 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준비하고 싶은 음식은 당연히 ’닭다리 간장 조림‘이다. 모두 옛사람이 되어버린 그 시절 그분들이 모두 그리운 것일까. 오늘은 유난히 간장 조림 닭다리가 생각난다. 그래서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닭다리 요리를 준비했다.


우선 신선한 닭고기를 구입했다. 들어갈 양념으로는 진간장, 집간장, 마늘, 청양고추, 고춧가루, 올리고당, 생강즙, 깨소금, 참기름이 있다. 집간장은 아직도 ’나의 엄마표‘ 간장이 있으므로 오늘도 사용한다. 마늘은 엄마 사위가 농사지은 실한 녀석으로 준비했다. 고춧가루도 작년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지어 마련했다. 깨소금은 아흔셋 시모님이 절구통에 찧어서 보내주셨다. 참기름도 시모님 소일거리로 농사지은 깨로 짠 녀석이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청양고추 세 개도 차렸다. 


닭은 쌀뜨물에 잠깐 담가 두어서 잡내를 없앤다. 헹군 후 간장 한 스푼을 끼얹고 닭고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서 삶는다. 조금 센불에서 10분 정도 삶고 살짝 익히는 게 좋다. 간도 배이고 기름기와 잡내도 없애는 과정이다. 한소끔 끓인 후 찬물에 깨끗이 헹군 다음 거기에 다시 간장과 생강즙, 올리고당을 넣고 조린다. 간이 배였을 때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고 섞는다. 육수가 묽으면 감자전분을 한 숟가락 살살 뿌리고 뒤적인다. 1~2분 후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마무리한다. 


긴 연휴라서 가까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와서 급히 차렸다. 오랜만에 만들었더니 남편의 표정이 황홀해 보인다. 젓가락 놀림도 재빠르고, 먹는 소리도 경쾌하고, 표정도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듯이 행복해 보인다.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마련했다고 했다. 음식을 가장 많이 얻어먹은 사랑하는 이에게 요리해 주고 싶었다고 말하니 매일 생애 마지막 날 하잔다.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며 산다. 오늘이 그날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그날이 될 수도 있다. 엄마의 그날처럼... 엄마는 그날을 아셨을까? 아니면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셨을까?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금요일이면 그렇게 매일 요리를 하셨다. 


“아침부터 뭘 그리 만드시오?”

“우리 주야가 오는 날이라 이것저것 만들어보네.”


금요일이면 아침부터 하루 종일 부엌에서 탁 탁 탁 도마소리가 났다며 옆집 아주머니가 전한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그 사람의 모습과 정성과 영혼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선조는 제삿날이면 귀하고 맛난 음식을 잔뜩 차렸나 보다. 오늘은 닭고기 간장 조림을 먹으며 엄마와 옛 어른들을 음식으로 만나고 싶었다. 엄마를 대신해 남편과 함께 나누며 그 정성과 사랑을 온몸에 가득 채우고 골 깊이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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