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른들과 함께 살던 집 주소는 586번지다. 본적은 다르다. 630번지. 아버지가 엄마와 결혼하면서 새로 태어난 서류상 주소. 자연히 나의 본적지는 아버지 집 주소가 된다. 할아버지가 결혼한 막내아들한테 그 땅에 집을 지어주겠노라고 약속하셨지만 그 언약 이행은 끝내 못 하고 말았다.
630번지는 집 울타리 안에 있어도 감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일명 감나무밭이다. 뒤쪽 돌담 아래로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두세 칸 정도. 아주 어릴 적에는 돼지도 거기에서 키웠지만 허기진 돼지들끼리 잘 싸웠다. 밤새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돼지 콜레라가 한번 돌고 나서부터는 그 우리를 텅텅 빈 채로 두었다. 그러다가 빈 우리마저도 무너지고 헐리고 세월 속에 흙으로 파묻혀 사라졌다.
감나무는 수종이 다양했다. 한 그루도 같은 녀석이 없다. 할아버지가 모종을 다양하게 구해와서 그렇게 심으셨다. 알이 굵고 황금빛으로 큼지막하게 열리는 단성시 감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주 작아서 어린아이 손아귀에도 쏘옥 들어가는 기얌(고욤)나무도 있었다. 네모나고 납작하거나 둥그스름한 감나무도 있었다. 단맛이 덜한 것은 주로 심시를 담아서 먹곤 했지만 어린 나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곶감은 둥그스름한 고종시로 만들었다. ‘새농민’으로 책 농사를 짓는 작은아버지가 접붙인 왕밤나무도 탱자나무 울타리 끝에 한 그루 섰다. 뾰족뾰족한 밤송이가 달리는 밤나무는 최대한 집 안에서 멀리 두었다.
할아버지 사랑에서 가장 가까이로는 포도밭도 있다. 포도나무는 딱 세 그루. 다정하게 마주보며 가지를 위로 올리고 서로 어깨를 겯고 자랐다. 여름철이면 나지막한 포도나무 아래로 보랏빛이 감도는 포도송이가 조랑조랑 열린다.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작은 알맹이가 맺히고 햇살과 이슬 속에 하루하루 자라서 보랏빛 큰 포도알로 변신한다. 그 과정이 신기해서 매일 아침이면 기상 나팔소리에 깨는 군인처럼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정작 맛보는 포도알은 몇 알 되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에 만나는 연두와 보라의 향연이었다. 일꾼 아재들이 거름을 많이 하고 잘 돌보면 포도송이도 제법 크고 알도 굵었다. 해마다 해거리를 했지만 돌보는 손길이 적으면 영락없이 그 티는 났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보다 먼저 봄을 알리며 뽀얗게 피는 매화나무, 복주머니 황금빛 유자가 주렁주렁 열리며 하늘을 찌를 듯한 유자나무, 증조할아버지가 좋아하셨다는 석류나무가 밭 가장자리로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다. 또랑이 지나는 물길 옆으로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섰다. 작은집과 가장 가까운 돌담 옆, 작은집 은행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한 그루. 은행잎이 노랗게 황금빛으로 물들고 찬바람에 금가루처럼 잎이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할아버지는 사랑채 툇마루 끄트머리에 서서 작은집을 향해 아우를 부르셨다.
“설천아~~, 올해도 은행이 많이 열렸구나. 반은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니라.”
이유인즉슨, 우리 집 은행나무는 수나무이고 작은집 은행나무는 암나무라서 그렇다. 우리 집 나무에서 종자가 날아가서 열매를 맺었으므로 그 절반은 우리 것이니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다. 항상 무심하게 지내시던 할아버지 두 형제분이 한 해에 딱 한 번, 가을이 깊어질 때는 은행 한 되박을 나누며 웃음소리 섞어 농을 주고받으셨다.
장마가 오기 전 감꽃이 피면 떨어진 감꽃으로 조롱조롱 목걸이를 만들어 두르고 감나무 가지에 새끼줄로 그네를 달아 그네를 뛰기도 했다. 새색시 입술같이 붉은 물앵두가 한창일 때는 앞가슴이 불긋불긋 물들도록 앵두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던 곳이다. 아버지는 앵두처럼 달콤한 꿈을 얼마나 꾸었을까. 새로 지은 신혼집에서 제 식구를 거느리고 알콩달콩 사는 꿈을. 심술궂은 봄비에 힘없이 떨어지고 마는 감꽃처럼 그 꿈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았다. 감나무밭 수많은 수종만큼이나 풍성하고 다채로웠을 그 꿈을... 터 닦기도 한 번 못 하고 말아서 한이 맺혔을까.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뜻일까. ‘69년에 가신 아버지는 산에서도 69번지에 묻히셨다. 그 집터도 새로이 619번지가 되었다.
바람이 차다. 비가 한 차례 쓸고 간 늦가을은 그렇다. 나뭇가지마다 잎을 모두 떨구고 감나무도 예외 없이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계절 약속을 어기지 않는 자연 덕분에 이때쯤이면 얻는 게 많아진다. 대나무 장대 끝을 벌려서 높은 가지에 달린 홍시를 똑똑 조심조심 따고 담으시던 일꾼들과 할머니. 가지마다 높게 달린 홍시는 까치밥이라며 꼭 남겨두시던 모습. 안채에서 엄마는 곶감용으로 고종시를 깎으면 할머니는 한 알 한 알 실에 묶어 줄줄이 감을 매달았다. 아직도 선명한 풍경이다. 제 살을 온통 빠알갛게 물들인 홍시를 장독대 항아리마다 반쯤이나 채우고 나머지는 살강 위 대바구니에 올려놓았다. 출출한 겨울밤, 하나씩 꺼내 드시며 긴 겨울을 지내시던 어른들 모습이 유난히 또렷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