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병원에 자주 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들어서 가는 건 아니다. 기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만들기 위해다. 그러니까 내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문서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니 자비를 들여서 그 서류를 마련해야 한다. 십삼만 원. 월급이 두 달째 들어오지 않고 있는 내겐 큰 금액이다. 주말에 시험 감독하러 가서 이 정도 받으니 그 한 나절의 노고는 기관이 요구하는 서류 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거대 코끼리 앞에 어이없이 작아지는 벼룩이다.
부담스러워서 검사는 최소한으로 하고 서류도 하나는 줄였다고 하니 그 하나마저도 다시 제출하라고 한다. 뒤이어 따라오는 말은 그 하나는 기관이 부담한단다. 무슨 기준인지 설명도 없다. 코끼리는 늘 그랬다. 벼룩이 어디 눈에 보이기나 하겠나. 힘없는 벼룩은 그나마 오만 원 절감에 순간 웬 떡이냐 싶다.
요즘 나는, 쉰다. 육 개월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다. 책쓰기를 독려하는 신의 계시. 아니었나 보다. 어느 사제는 신의 계시를 함부로 들먹이면 사이비라 했다. 그랬을까.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열흘의 자유시간을 감지하며 완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 기회이며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다그치는 꾸지람?!! 이러니 내 믿음의 보폭은 항상 흔들린다.
요즘 나는, 장 건강이 괜찮았다. 오늘은 심상찮다. 사 년 전에는 나쁜 상태가 극에 달해서 쉬어야 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 쉬고 싶었다. 바깥일은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줄였다. 끊임없이 들볶는 짝꿍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변함없다. 몸이 먼저 알았을까. 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육천 보 남짓. 운동 삼아 걷던 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말았다.
급하게 달려간 곳은 인근 경로당이었다. 아마도 내 인생 최초의 방문이리라. 길가에는 상가가 즐비하고 가까운 공공기관도 있었지만 발길이 이끈 곳은 옆 동네 아파트 상가에 있는 경로당. 왜 하필이면 그곳일까 싶다. 나이가 들고 이십 년을 훌쩍 넘어서면 오늘의 첫 발걸음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날마다 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스무 해를 어떻게 채우고 누려야 미래과거형이 아름답게 쓰일지 촉수를 곤두세우는 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