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 뉴욕의사 Nov 14. 2020

당신의 마지막 순간은 어떠할까요.

그리고 내가 보는 맨해튼 최대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두 얼굴

 내가 뉴욕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그래서 비교적 속속들이 잘 아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부자 많기로 유명한 맨해튼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네 중 한 곳이다. 그리고 그 북쪽의 끝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할렘'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에 그 언저리는 엄청난 부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 동네의 남쪽 끝자락과 북쪽 끝자락에서 일하면서 미국 의료의 양극단을 몸소 체험해 보는 귀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11월 한 달간 이 동네의 파크 에비뉴 맨션에서부터 할렘의 프로젝트 아파트(정부에서 소외 계층을 위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공공 하우징)까지 가가호호 방문을 하고 있다. 파크 에비뉴의 맨션들이야 뭐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가 없는 여러분이 흔히 생각하시는 뉴욕의 부잣집이다. 뉴욕의 각종 부호들이 살고 계시는 이 맨션들은 들어가는 로비부터 굉장히 깨끗하고 화려하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도어맨들의 인사를 받으며 아직도 엘리베이터 보이 좌석이 남아있는 고풍스러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환자분들의 아파트에 도착하면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알고 계시는 풀타임 상주 간호사 및 도우미분들이 계신다. 코비드 주의사항을 엄격하게 따르는 집들에서 우리는 가끔은 살짝 외부 벌레 취급을 받으며 수많은 방 중에 객실에 앉아서 환자분을 기다리는데, 이 환자분들 중에는 구글링 하면 나오는 분들도 꽤 계신다.


저렇게 무미건조하게 생긴 아파트의 내부는 대략 저런 식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 출처는 뉴욕 타임스 및 각종 부동산 사이트 :)

    며칠 전에 만난 분은 대대로 유럽에서 가족사업을 하시는 100세를 눈 앞에 두신 분이셨는데, 독일에서 태어나서 자라시다 세계 2차 대전 때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오셔서 미 정보국에서 일하시다 퇴직하신 후 가족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등 이력이 워낙 다양하셔서 정말 재미난 대화를 나누었는데 방문 마지막 판에 직접 출판하신 자서전도 한 권 주셔서 요즘 틈틈이 재미나게 읽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개인정보 보호상...;;;-  정보국 경력자답게 나이가 무색하던 그 엄청난 레이저 샤프하심과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던 그 할아버지. 한국이 코로나 방역을 너무 잘해서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시길래, 아니 이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군가 하며 나를 헉!하게 만들었던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휠체어 타고 나오시자 눈빛만 보고도 촥촥 뭘 원하시는지 알아차리고 도우미 아줌마한테 정확하게 지시하시며 숨찬 할머니 말 더 안 해도 되게 모든 것을 관리하시던 그 할아버지. 열 살 어린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시는 게 최대의 재난이라고 말씀하시던 쏘스윗 할아버지. 다시 한번 더 찾아가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을 만큼 팬심을 불러일으키던 재미난 분이다.

   

반면 그 위로 몇 블록만 올라가면 시작되는 뉴욕 빈민가의 프로젝트 아파트들은 무서운 곳이다. 얼마나 무서운 곳이냐면 뉴욕 경찰들이 밤마다 각종 범죄 및 마약거래 방지를 위해서 아파트 층층이 순찰을 돈다. 내가 응급실에서 일할 때, 아파트 복도에서 칼 맞고 오신 분 및 강간상해 등 각종 범죄 피해자들을 꽤 많이 치료했었는데, 그때는 잘 몰라서 도대체 아파트가 어떻길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더랬다.  

비슷하게 무미건조하게 생긴 아파트 외부 및 역시 뉴욕 타임스에서 찾은 내부 사진

    

오늘 비바람을 뚫고 간 집은 저어~ 북쪽 깊숙한 할렘의 프로젝트 아파트이다. 언제 도착했는지 문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옛날식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진동하는 소변 냄새에 숨을 멈추고 싶었지만, "누가 전립선 비대증이 심했나 봐...? 하며 의사 조크를 같이 가던 사회복지사에게 던지고 우리는 꼭대기층에서 내렸다. 굽이굽이 복도를 따라 코너 아파트에 도착해 들어가자 다시 한번 헉~ 온 집안이 뭔가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고, 마스크를 사정없이 파고 들어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풍취. 프로젝트 방문을 꽤 여러 번 해 봤지만 오늘 같은 집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저씨가 놓아주신 간이 의자 위에 앉아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었다. 30여 년 함께 살아오신 50대의 눈이 반짝반짝한 이 부부는 남부에서 살다가 아저씨가 군대를 퇴역한 후 바로 결혼을 해서 뉴욕에 오신지는 2-30년이 되셨다고 한다. 아저씨는 퇴역 이후 이삿짐 노동 등을 하시며 줄곧 살아오셨고 아주머니는 집에서 가정과 4남매를 돌보셨는데, 다들 커서 분가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하시며 자식들이 참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주머니께서는 아저씨가 튼튼하고 참 섬세하게 필요를 잘 돌보아 주신다고 칭찬하셨다. 예의 바른 남부 사투리가 살짝 남아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와 함께 우리는 다 같이 하하호호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신을 믿는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아, 저희 Spiritual Care Counselor(구글 번역기에도 나오지 않는 이 단어는... 영적 필요 상담자 정도로 번역 해 두자) 연결해 드릴게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하다 아저씨께서 이 아파트에서 20년 정도를 사셨는데,  아 말도 말아요~ 하시면서 아저씨 처음 이사 오셨을 때는 엘리베이터가 지하실에서 사람이 줄로 당기는 시스템이라 떨어질까 무서워 아무도 엘리베이터 안 타고 계단으로 다녔다고 하신다. 음... 20년 전이라 해도 2000년인데 설마... 하지만 미국, 특히 뉴욕의 빈부 격차를 생각하면 가능할 만도 하지.   

 아주머니께서는 지금은 몸이 좀 아프긴 하지만 부족한 것 없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고 신앙이 있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셨다. 그래,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들이 그다지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면서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방문을 마치고 나와서 같이 간 사회 복지사에게 저분 진단명이 뭐야? 물어봤더니, 알콜성 간경화증이란다.

어? 그렇게 행복하신 아주머니, 술은 언제 드신 거지...? 그것도 50대 초반에 알콜성 간경화증으로 호스피스에 오기 쉽지 않을 텐데...?

 어, 좀 그렇지...? 아주머니, 조현병도 있으셔~

갑자기 스케줄 된 방문이라 차트 리뷰를 못해서 사전 정보가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방문을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았더니 조금 다른 그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철없고 꿈 많은 아이로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는 나이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의 인생의 마지막 자락을 함께하는 요즈음, 정작 나는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고 있게 될지 궁금해진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럴 걸 저럴 걸 하는 후회가 없었으면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하게 생각해 오던 이런 것들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이 편안하게 다가오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