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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윤제 Nov 07. 2022

옥수수밭의 구덩이

2,

 그곳은 원래 들짐승들이 배회하던 황무지였다. 오래전 호기심 넘치는 사내아이 두 명이 황무지로 들어간 뒤에 실종되었다. 경찰이 사흘 동안 황무지를 이 잡듯이 수색했지만 끝내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때부터 경계에 철조망이 세워진 황무지는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다. 1년 뒤 황무지에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황무지를 새카맣게 뒤덮은 까마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었다. 지독한 소음을 견디지 못한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돌을 던졌다. 까마귀 떼는 사람들이 던진 돌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화가 잔뜩 치민 사람들이 공기총을 쏘기 시작했다. 매일 수백 발의 총성이 황무지를 뒤흔들었다. 어떤 사람을 불을 붙인 폭약을 던졌다.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까마귀 떼는 이듬해 초봄 무렵에 황무지를 완전히 떠났다. 까마귀 떼가 사라진 황무지에 옥수수 몇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한여름 무럭무럭 자란 옥수수는 씨알 굵은 열매를 주렁주렁 열었다. 이듬해 더 많은 옥수수가 자라났다. 그리고 역병처럼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간 뒤에 황무지 전체가 옥수수밭이 되어버렸다. 옥수수 익어가는 달콤한 냄새가 황무지를 진동하는데도 멧돼지와 고라니는 출몰하지 않았다. 대신 달콤한 냄새에 이끌린 동네 사람들이 철조망을 제거하고 옥수수밭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마대 자루 가득 옥수수를 따서 집으로 가져와서 삶고 구워서 먹었다. 한 여자가 삶은 옥수수를 먹고 복통을 일으켜서 응급차에 실려 갔다. 매일 응급차 사이렌이 동네를 휘젓고 다니자 사람들은 집안에 가득 쌓아 놓은 옥수수를 전부 황무지에 갖다 버렸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옥수수는 제멋대로 열매를 맺었고 저절로 떨어져서 썩어갔다. 황무지는 점점 더 비옥해졌고 옥수수는 더 굵고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는 옥수수밭으로 들어갔다. 고랑도 없이 함부로 자란 억센 옥수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노회한 농부처럼 삽으로 이파리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무성한 옥수수를 뚫고 반 시간쯤 나아가자 작은 둔덕이 나타났다. 둔덕 위에는 헐벗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둔덕으로 올라가서 미루나무 둥지에 등을 기대고 앉은 그는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숨을 가라앉혔다. 모든 선의와 악의가 잠들어 고요한 세상을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둔덕을 넘어갔다. 빽빽하던 옥수수가 조금씩 헐거워졌다. 잠시 후 좌우로 열두 걸음 정도 되는 공터가 나타났다. 그는 높이 자란 옥수수를 흘긋 쳐다본 다음 달빛에 드러난 땅을 유심히 살폈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삽을 땅속에 대고 발로 밟았다. 땅속으로 쑥 들어간 삽을 뒤집자 시커먼 흙이 나왔다. 그는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줌 집어 만졌다. 부드럽고 찰진 흙 알갱이가 손끝에서 부서졌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는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동작은 단순했다. 삽을 발로 밟아 땅속에 밀어 넣고 파내면 그만이었다. 잠시 후 작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구덩이로 들어간 그는 더 강한 힘으로 흙을 퍼냈다. 흙더미에서 몸통이 절단된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구덩이가 점차 넓고 깊어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삽 끝에 뭔가 딱딱한 게 부딪혔다. 사금파리 조각이었다. 그는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사금파리 조각을 구덩이 밖으로 휙 던졌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뒤이어 찢어진 구두, 화장품 병, 목이 빠진 인형, 그릇 같은 잡다한 물건이 나왔다.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땅을 팠다. 자질구레한 물건이 사라지고 다시 황무지 냄새를 풍기는 시커먼 흙이 나왔다. 구덩이 옆에 퍼낸 흙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십여 분 뒤 삽 끝에 뭔가 둔중한 느낌이 닿았다. 삽질을 멈춘 그는 갈라진 땅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삽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흙 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만져지는 건 없었다. 손을 빼고 일어선 그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삽 끝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것일까. 가벼운 전율이 몸을 흔들었다. 그는 구덩이 밖으로 나가서 흙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지금까지 밤마다 판 구덩이가 수십 개였다. 그런데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구덩이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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