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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윤제 Nov 07. 2022

옥수수밭의 구덩이

3,

문득 지난주 구덩이를 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40대 중반의 남자는 구덩이를 파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는 남자가 파고 있는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꽤 깊은 구덩이군요.”

 “아직 더 파야 하오.”

 남자가 판 구덩이는 허리가 잠길 정도로 깊었다. 

 “얼마나 깊이 파려고요?”

 “늘 1m 깊이를 판다오.”

 “그렇게 깊이 판다고요?”

 “당신은 얼마나 파는 거요?”

 “난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팝니다.”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관성이 없소.”

 “깊이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오.”

 “어째서죠?”

 “일정한 깊이로 구덩이를 팔 때 그것을 찾아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요. 나도 처음 구덩이를 팔 땐 당신처럼 규칙과 일관성이 없었소. 그저 생각날 때 삽을 들고 옥수수밭으로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구덩이를 팠소. 그런데 수십 개의 구덩이를 팠지만, 그것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소.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외다.”

 “그때부터 일정한 깊이로 구덩이를 팠단 말인가요?”

 “그렇소.”

 남자는 몸을 일으킨 다음 허리에 차고 있는 줄자를 꺼내 구덩이로 내렸다. 70cm에서 줄 자가 멈췄다. 남자가 자를 거두고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성과는 있소?”

 “전혀 없습니다. 그쪽은요?”

 “나는 조금 느꼈소.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분명 그것을 감지했소.”

 “어떤 느낌인가요?”

 “쇠붙이가 강한 자기에 끌리는 느낌과 비슷했소.”

 “그것을 찾았나요?”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곧 찾아낼 거라고 믿고 있소.”

 남자의 눈빛에는 강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는 그런 남자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요?”

 “만약 그것이 1m 10cm에 묻혀 있으면 어떡합니까?”

 순간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바로 남자는 자신이 판 구덩이를 쳐다보며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 그럴 리 없소. 그것은 분명 1m 깊이에 파묻혀 있소.”

 그는 자신이 판 구덩이를 들여다보았다. 구덩이는 푸른 물이 가득 고인 우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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