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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윤제 Nov 07. 2022

옥수수밭의 구덩이

5,

 “이런 일이 많아서 늘 녹음을 합니다.”

 “다시 고속 터미널로 가 주십시오.”

 “식사 시간이라서 운행할 수 없습니다.”

 택시 운전사는 그를 내려놓고 어두운 밤거리로 사라졌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는 거리에 인적이 거의 없었다.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에 면한 건물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서너 명이 그를 흘끔거리며 지나쳐갔다. 도로 건너편 2층 건물의 창문이 벌컥 열렸다.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고는 좌우를 살핀 다음 가래침을 퉤 뱉고 창문을 쾅 닫았다. 불 꺼진 슈퍼마켓 앞을 서성거렸지만, 오가는 택시가 없었다. 간간이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덤프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했다. 저수동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동네였다. 무엇보다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그는 슈퍼마켓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신문에서 저수동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생각났다. 저수동은 원래 인근 세 도시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집결되는 매립지였다. 쓰레기를 받을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자 그 위에 엄청난 양의 흙을 퍼붓고 택지를 조성했다. 건물과 집이 들어선 지 십 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지반이 침하 하기 시작했다. 침하 속도가 빠른 곳은 하루에 10cm씩 가라앉았다. 하수구에서 악취가 진동했고 수도에서 시커먼 오물이 쏟아져 나왔다. 시의 의뢰를 받은 토목 전문가들이 저수동을 찾아와서 지반을 조사했다. 그들이 내놓은 대책은 콘크리트 파일이었다. 침하가 심한 땅부터 콘크리트 파일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미터에 달하는 파일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지반이 젤리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땅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673가구 2천여 명이 사는 저수동이 거대한 싱크홀이란 소문이 여름날 시체 썩는 속도로 퍼져 나갔다. 주민들이 하나둘 저수동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소문과 달리 거대한 싱크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수동이 점진적으로 가라앉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수동은 이제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버티고 있는 마을로 변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저수동을 가자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어두운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 외곽의 병원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모두 네 개의 방이 있었는데 빈소가 차려진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서둘러 빈소로 들어갔는데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문상객들과 맞절하는 상주가 낯설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영정사진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장례식장을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빈소를 나온 그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동안 복도를 서성거리던 그는 원무실을 찾아갔다. 조끼를 단정하게 입은 젊은 직원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그는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컴퓨터를 조회한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홍광자 씨와 어떤 관계입니까?”

 “제 어머니입니다.”

 “홍광자 씨는 어제 아침에 출상했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되물었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14일입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서 하루 치 기억이 통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트럭을 얻어타고 저수동을 빠져나온 그는 곧바로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 뒷자리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져서 깊이 잠들었다. 그 사이에 하루가 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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