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건.
나의 제안서가 서울시 공무원에게 까였다.
성인권 강사 교육을 함께 듣고 활동하는 세 사람이 모여서 의기투합했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새로운 모델을 한번 만들어보자. 과연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 서울시 청년청에서 주관하는 지원 사업 공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름도 거창하게 '경력단절 여성의 정책 참여와 컨텐츠 제작을 위한 플랫폼 구축 사업'이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결혼 전 비슷하던 남녀 고용률은 결혼 후에 급격한 격차를 보인다
2017년 혼인상태별 남녀 고용률 차이는 미혼인 남자는 52.8%, 여자는 51.2%로 1.6% 차이에 불과하지만, 배우자가 있는 남자는 81.9%, 배우자가 있는 여자는 53.4%로 그 차이가 28.5%에 달한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서 사표를 던지게 되는 두 번의 위기가 온다. 한 번은 육아 출산을 경험하면서이고, 여기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틴다 해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많은 수의 여성이 K.O패를 인정하며 하얀색 수건 대신 사표를 던진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가족 돌봄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국가적 손실을 야기함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국가적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니 아이를 낳으시오 라고는 말 못 하겠다.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얼마나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많은지를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를 위해서 낳아라!라고 하기보다 아이를 낳아도 자아를 상실하지 않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러니 낳아도 괜찮습니다 라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급격한 경제발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육아에 대한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 엄마 세대야 (일일이 개인의 생각을 물어본 적은 없으나)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가 돌봄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것이 권장되던 시기였다. 외벌이를 해서도 주택 하나 정도는 구입할 수 있었으며, 주변에 친척들이 살거나 한 동네 골몰 한 아파트 동이 다 내 친구고 이웃지간이어서 애들이 오고 가며 놀다 집에 와서 저녁밥 먹는 그런 생활을 영위했었다. 나만해도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지만) 끝나고 재깍재깍 집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친구네 집에 산에 들에 놀러 다니다 어두컴컴해져야 집에 들어가고는 했으니까. 지금은 너무 흔한 말이 되었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하지 않던가. 최소한 온전히 돌봄의 A~Z까지가 엄마 개인의 몫으로 돌려지지는 않았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벌이는 고사하고 맞벌이로 아등바등 살아도 내 가족 누일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까 말까 하고, 여성들조차 내 일을 포기하고 개인을 상실한 채 온전히 육아를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온전히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맞다 라는 전제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나도 열심히 공부했고 배울만큼 배웠고 직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데, 왜 내 일을 멈춰야 하지?
단순히 고학력 여성 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경력 단절에 대한 불만이 늘어난 것이다 라는 생각은 너무 나이브하다. 학력이 높건 낮건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이고, 내가 선택에 의해서 일을 그만두는 것과 외부의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흔히 여성을 비하는 표현 중에 '취집 간다'라는 말이 있다.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일에 대한 욕심도 없고 얼굴이나 나이를 내세워서 어디 돈 많은 남자 하나 꼬셔서 직장에 취업하는 대신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표현이다. 주변에서 인터넷에서 아직도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다. 우리는 취집은커녕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하고 싶다.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하고 싶다. 그런데 그 선택을 가로막는 장벽이 너무나 거대하다. 자꾸 여성들이 회사에서 밀려나간다. 아이 돌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쓴다. 고위급 인사나 승진 대상자에서 여성을 찾아보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2,30대 여성들은 우리를 본다.
'뭐야, 결혼하고 애 낳으면 다 저렇게 되는 거야?' 내가 누군가를 목표로 해서 바라보고 열심히 매진할 수 있는 여성 롤모델이 점차 사라져 간다. 내가 좋아하던 과장님이 결국은 사표를 쓴다. 애 학교 가방 셔틀을 하고 있다.
나의 미래도 저렇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선택하겠다.
아이를 낳고 다시 재도약하려는 여성은 많다. 나조차도 첫째를 낳고 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홈쇼핑 일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다. 아이 돌봄의 문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첫째 아이는 13개월부터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어린이집 법정 근무시간에 맞춰서 따박따박 어린이집에 출근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회의가 있는 날은 저녁 9시까지 어린이집에 있기도 했다. 그러다 둘째를 갖게 되면서 처음으로 어린이집의 실상을 보게 되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 반만 되면 어린이집에 신발이 남아있지 않다. 많이 남아있어 봐야 고작 5개?
오후 5시가 되면 어린이집에 신발은 하나로 압축된다. 내 아이의 것이다.
이런 꼴을 보고 나니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몰라서 무식했으니까 일한다면서 아이를 저녁까지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마저도 36개월 영아기에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모성신화를 철저히 거부한 행위이다. 어릴 때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느냐는 날카로운 눈초리는 여전하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36개월 모성신화
그렇다면 왜 국공립 어린이집은 늘려야 하나? 그런 사회적 요구는 언발란스하지 않나?
각설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싶고 재도약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노력하는 엄마들이 있다고 하자. 기존의 재취업 기관을 이용해서 교육도 듣고, 자격증도 따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활보하고 싶다는 욕망도 잠시. 해당 기관들의 프로그램을 보면 미용, 질병 간호 등의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전공이나 내가 해왔던 일들을 계속해서 살려서 일하고 싶은데.. 혹은 당장은 일하지 않고 아이 양육을 전담하더라도 지속적인 자기 계발은 놓치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는 고전적 여성관에 치우진 발상이다. 특히나 재취업이나 창업을 한다고 해도 단순 노동이나 파트타임 등 실질적 일자리의 개선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 여성 일자리 센터를 비롯한 재취업 기관조차 아이와 함께 교육을 받거나 맡길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참여조차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시설적으로 보완하고, 3~40대 젊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담아내고 삶을 바꾸는 주체적인 존재로써 자기 계발뿐만 아니라 정책 제안, 컨텐츠 생산까지 할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당장 고용률 1% 상승이라는 단기적인 성과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이 원하는 것. 자아를 놓치지 않으면서 다음의 삶의 도약을 꿈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내 목소리를 사회에 제시하고 정책에까지 녹여낼 수 있는 '실질적으로 내 삶을 바꾸는 주체적인 경력단절 여성'의 모델을 그려내고 싶었다.
3명의 엄마들은 이 제안서를 쓰기 위해 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밤 10시에 만나 그다음 날 새벽 첫차가 다닐 때까지 회의를 하고 기획안을 작성했다. 두세 시간 남짓 쪽잠을 자고 누구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누구는 출근을 하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오후에 모여 회의를 지속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을 뜬 것이 아니었고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자 연신 커피를 마셔댔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오랜만에 우리의 열정을 다 쏟아내서 목적이 분명한 일을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사실 흥분되어 있었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피티 발표날이 되었다.
기존의 정책들에 대한 한계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이 모델이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자 노력했다. 단순 일자리 창출만이 그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주체적인 자아를 가진 인격체로써 접근해 주기를 바라면서 열과 성을 다해 피티를 했다.
피티를 마쳤다.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중 한 분이 질문을 던졌다.
"결국 일자리 창출 모델은 아닌 거네요. 그렇죠?"
그것으로 끝이 났다.
우리의 경단녀 프로젝트는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