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체적인 여성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불평등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공부했고, 내가 노력해서 일을 했으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것 또한 모두 내 선택입니다.
나만 열심히 잘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지금껏 살면서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른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남녀가 불평등하다 라는 얘기는 많이 나오지만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비로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의 불평등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잡히는 추행을 당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너무 이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서 그런 것인가? 내가 웃음이 헤퍼서 그런 건가? 내가 쉬운 여자로 인식되게끔 한 행동은 없었나?' 하고 나 자신을 반성하고 나를 채찍질했다. '쉬운 여자'라는 고정관념은 우리에게 폐기된 문화인가? 아니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사람들의 잡담 속에서 전파되고 인식되고 있는가? 그 행위를 한 남자를 탓하기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허용할 만큼 방어하지 않은 것인지 그 탓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바로 그런 쉽고 쉬운 말 말이다.
그제야 과거의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엄마랑 남동생과 함께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엄마와 남동생은 저 앞에 둘이 따로 앉았고 나는 두 줄 뒷자리에 앉았다. 고속버스였었는데 내 오른쪽에는
남성분이 앉아계셨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건지 중간에 그 자리에 앉은 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
그 사람이 내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올려서 점점 위쪽으로 스멀스멀 손을 스쳐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시선을 허벅지 쪽으로 향했더니 내 치마 안쪽으로 그 사람의 손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사람의 손을 옆으로 치워줬다. 말 그대로 손을 떼서 옆으로 치웠다.
조금 있다가 다시금 손이 올라온다. 이번에는 그 사람의 손등을 꿀밤 때리듯이 톡 하고 쳤다.
뭐 이런 미친 사람이 있나 싶어서..
돌아이다. 그런 상 돌아이가 따로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중학생 따위가 성인 남성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사람이 칼이나 다른 흉기를 들고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내 인생은 중학생 때 끝났었을 수 있거나, 신문 귀퉁이 사회면을 내 이름으로 장식했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그분은 상대적으로 착하신(!) 분인지 다음 정류장에서 황급히 내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바리맨은 너무 흔하다. 바바리맨이 왜 학창 시절을 추억하는 단어로 미화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그런 범죄에 너무 무감각하다. 바바리맨은 범죄자다.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다. 미화하거나 개그의 소재로 삼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소개를 받아 광화문에 있는 호텔 중의 한 곳에 취업을 했다. 프론트 오피스 자리였다. 이래 봬도 나름 영어도 되고 일본어도 되는 사람이다 내가. 여하튼 프론트 오피스 일을 담당하면서 VIP라운지까지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VIP 라운지는 조식 시간에 VIP 손님들이 조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별도로 간단히 조식을 드실 수 있는 공간이고 오후에는 미팅을 하거나 간단한 다과를 제공해 드리는 장소였다. 그만큼 VIP 손님들이 이용하시는 별도의 공간이다 보니 각 파트의 장들이 라운지를 돌아가면서 챙겼다.
어느 날 조식 시간에 VIP 라운지에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다. 식음료를 담당하는 F&B 매니저님도 함께 관리를 맡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테이블을 세팅하고 음식을 나르고, 정리까지 맡아서 하는 F&B 소속의 직원들과는 달리 나는 입구에 스탠바이를 하면서 오고 가는 VIP 손님들의 명단을 체크하고, 혹여나 있을 문의사항에 대비하거나 체크아웃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바쁜 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스탠바이하고 있는 내게 F&B 매니저님이 다가온다.
"감주, 밥 먹었어?"
갑자기 내 귓불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서 슬슬 비빈다. 내 귓불을 만지며 그분은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한다.
인사를 하면서 귓불을 만지는 게 그분의 습성인지는 몰라도 불쾌해진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 거리를 둔다.
F&B 파트에서 일하는 언니들은 그렇게 옷 갈아입는 락커룸에서 지배인 뒷담화를 하고는 했다.
"어제 또 막걸리 마시러 왔잖아" "아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또 엉덩이 만졌어? 대체 그 새끼는 왜 그런데"
지배인과 파트 매니저들이 회식을 한다며 그렇게 F&B 주방에서 막걸리를 마셔댄단다. 회식하는 사람들끼리만 있으면 될 텐데 굳이 퇴근해야 하는 언니들까지 동석을 요구한다고 했다. 게다가 여직원들의 엉덩이를 그렇게 만져댄다고 했다. 그놈의 엉덩이. 자기 엉덩이를 그렇게 남들한테 만져달라고 까 봐라. 기분이 어떤가
국민은행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탈락시키고 남성 합격자를 늘리는 채용비리를 저질러 작년에 해당 은행 인사팀장은 1년형을, 은행은 고작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다. 사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 몇이나 될까 싶다. 우리는 서로 부정하고 있지만 채용상에서도 이런 불평등이 있음을 피부로 알고 느끼고 있다. 그런 불평등이 만연한 곳 중에 하나가 호텔업계다. 최소한 내가 일했던 호텔은 그랬다.
사람들은 흔히 호텔리어라고 하면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프론트 오피스나 F&B를 많이 연상한다. 하지만 실제 호텔에서의 권력 위계상 보면 상위는 백오피스다. 오피스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 예약을 잡고 대형 연회를 유치하고 고위급 인사를 상대하고 호텔 전반의 흐름을 관리하는 직급 말이다.
내가 일했던 호텔만 해도 그렇게 청와대 인사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출근 첫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이 청와대 대변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일은 고객을 앞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오피스 뒤편에서 고객의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들이 상급자들이 조율 한다.
호텔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일자리가 풍부한 곳이다. 프론트오피스건 F&B건, 하우스키핑의 경우도 여성 노동자가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백오피스는 어떠한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일하던 당시 예약 부서에는 여자가 딱 한 명 있었고, 지배인급에서는 당연히 여자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약 여성 지배인들이 있었다면 총지배인과의 회식 자리에서 말단 여직원들의 엉덩이를 희희낙락 주물럭 거리는 상황들이 여전히 발생했을까? 백오피스에서 일해야 승진이 된다. 한 부서를 총괄하는 지배인, 호텔 전체를 관리하는 총지배인은 관리 직급이므로 관리직으로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백오피스에서 근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반면 여성의 비율이 높은 프론트오피스의 경우는 어떨까. 함께 일했던 언니 중에 전설로 불리는 언니가 있었다. 무려 아이가 둘이나 되는 언니였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퇴사를 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는데 그 언니가 처음으로 그걸 깼다는 것이다. 육아휴직도 최초로 받아서 쓴 사람이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그 언니가 없는 자리에서 "아~ 그 선배는 진짜 독해..." 하면서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 선배 언니랑 어느 날 단 둘이 얘기 나눈 적이 있었다.
"언니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시고.."
"감주야, 내가 진짜 얼마나 울면서 버텼는지 아니? 나 그때 육아휴직 쓰면서 진짜 그만두려고 했었어. 근데 돈도 돈이고 이 일 그만두면 내가 어디서 또 일을 구하겠어. 3개월 육아휴직이라고는 하는데 나 20일 만에 복귀했어. 복귀하면서도 나 가슴에 사표 품고 다녔다. 언제 그만두라고 할지 몰라서..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내 뒤에 애들도 다 그만두겠구나. 그래서 버틴 건데 진짜 힘들다. 나 애들 시누이가 자기 애들이랑 같이 봐주잖아. 근데 눈치도 너무 보이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이 돈 벌어서 다 애 봐주는 값으로 들어가는데 뭐가 남나 싶다. 산후조리 못해서 뼈마디만 엄청 쑤신다 야.."
일 년 뒤에 함께 일하던 언니 한 명이 또 임신을 했다. 그 사람도 아이 낳기 일주일 전까지 미친 듯이 버티며 일을 했다.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 락커룸에 가서 잠시 쉴 때 보면 그 언니 다리는 코끼리 다리 그 이상이었다. 다리 부종이 너무 심해져 종아리는 퉁퉁 붓고, 구두 뒤로 튀어나온 발등에는 핏줄인지 힘줄인지 곧 튀어나올 것 같이 하고 있는 다로 모양새였다. 배는 앞으로 나오고 종아리는 붓고.. 그 언니도 락커룸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었다. 그래도 버티고 버텼다. 그래야 다음 애들이 임신하게 되고 사표 쓰는 일이 안 생기게 될 거라고. 그렇게 언니들은 버티고 버텼는데, 지금은 다들 사표 쓰고 애들 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은 그렇게 무서운 거다.
그때는 몰랐다.
나만 잘난 줄 알았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나는 안다. 내가 지금 임신 출산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내 선배들이 이를 악물고 버텼기 때문에 인식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비로소 엄마가 되고 나니 내가 그간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지나쳤던 것들이 일들이 얼마나 내 평생에 생채기를 냈던 추행이었고, 차별이었음을.
내 딸들에게는 이런 사회와 문화를 물려주지 말아야지. 그러지는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