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만큼 나도 중요하다

by 감주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제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최근 발매된 책의 저자 강연회가 열린 날이었다.

그 책은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들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었고, 공저자 중에 한 분이 자신의 경험담과 책을 쓰게 된 계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사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지난 4,5년간 급물살을 타면서 확산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과 인식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물결에 기혼 여성의 입지는 여전히 애매하다.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혹자들은 기혼 여성을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고 유지하는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논하기도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비혼, 비출산'을 열심히 외치기도 기혼자 입장에서 껄끄러운 면이 있다.

'아니다, 지금의 우리가 변해야 다음 세대는 우리와 같은 차별과 불합리한 현실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내 생각과 공통점이 많은 저자분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청중의 대부분은 3,40대 비교적 젊은 층의 남성이 많았는데, 그간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를 제시해줘서 고맙다 라는 평이 많았다. 특히 현재의 페미니즘은 자꾸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는데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소프트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많은 남성들도 공감해서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 앞의 남성분 차례가 되었다. 이목이 집중된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요.

여성의 권리 신장이나 양성평등이나 페미니즘 이런 거 다 좋은데, 아이를 자꾸 수단화하고 소중한 아이를 자꾸 자기 인생의 짐같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는 인상이 강하게 듭니다. 아이도 소중한 생명이고 그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꾸 아이 키우면서 힘들다 힘들다 만 이야기하고 정작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아이 입장에서 보면 불행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자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갑자기 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이 사람은 대체 아이는 낳아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제가 낳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지금의 논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여성의 삶도 바라보아야 한다는 관점을 이제야 논해 보자는 것이 아닌가.


마침 그 뒤에 내 차례가 되었기에 나는 입에 불을 뿜으며 말했다.

"세상에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어보셨습니까? 그 소중한 생명을 세상에서 자기 엄마, 아빠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키우는 과정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을 겪어야 하고, 알게 모르게 사회적 차별이 존재했던 것이고, 이제야 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시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 엄마는 행복한가? 를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만 이야기했지, 낳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가끔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이 안되지 않습니까? 0.98 이렇습니다. 이럴 때는 사회적으로 출산율 저하가 큰 문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입을 모아서 얘기하면서, 정작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에서 이런 점이 힘들어요. 제도적으로 보완해 주세요.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해 주세요 등의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가정에서 키우는 거고, 개인의 문제지 그걸 왜 국가에 요구하느냐' '누가 낳으라고 했냐?' 면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비혼 비출산 얘기를 하는 건데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양육자로써 비혼 비출산을 주장하기보다는, 다음 세대에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게 다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문화의 변화와,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법 체계에 비해 문화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있었던 일인데, 저희 남편이 몇 년 전에 아이 때문에 회사에서 먼저 퇴근해야겠다고 상사에게 얘기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 죄송한데 애 때문에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그 상사가 얼굴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람이 차를 바꿨습니다.

저 오늘 차가 나와서 픽업하러 조금 먼저 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사가 그랬답니다.


그래그래 그래. 어서 가봐. 얼른 가.


말이 필요 없었던 거죠. 차는 중요한 거니까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먼저 회사를 빠져나갈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거죠. 육아휴직이 법제화되어 있으면 뭐합니까. 1년 육아휴직 쓰고 오면 자리가 빠져있을 게 뻔한데. 그런 문화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있는 법 제도도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겁니다."


항상 우리는 무언가가 바뀌기를 요구할 때 법제도의 개선을 먼저 언급한다. 법이 바뀌면 당연히 그에 따른 후속 조치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평등과 관련해서는 있는 법이나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남녀고용평등법) 3장의 2 일·가정 양립 지원 제19조(육아휴직)에 의하면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입양한 자녀를 포함한다)를 양육하기 위해 1년의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남성뿐만 아니라 심지어 출산을 직접 경험하는 여성들 또한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가?


어느 쇼호스트는 출산 후에 한 달 만에 살을 쏙 빼고 복귀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근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건강을 염려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향후 출산 계획이 있는 여성 쇼호스트들은 혹시나 한 달 만에 복귀하는 것이 나쁜 선례를 남길까 봐 두려워했다. 회사에서는 3달 휴가를 쓰는 것도 이제는 감지덕지할 것이 아니냐면서. 뼈마디도 다 안 붙었을 출산 한 달 만에 복귀한 그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그때 매우 불안했단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자기가 육아 휴직하고 복귀했을 때 자기 방송 횟수가 줄고 자기를 안 써줄까 봐, 심리적인 불안감이 온전히 내 몸 하나 생각하고 출산 후 몸조리를 하게끔 놔두지 않았단다. 그 와중에 친하게 지내던 피디가 전화해서 한마디 했다는 것이다.

"언제 복귀해?"

그래서 한 달 만에 복귀했다는 얘기였다.


문화가 아직 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이 우리 삶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비단 여성들만이 문제제기해서만도 안된다. 공존하는 삶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여성과 남성 모두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것. 가부장제의 틀에서 남성도 좀 더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것.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개인으로써의 인간을 박탈당하고,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면서 개인을 상실하고 직업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게 했던 그런 문화에서 우리는 이제 탈출해야만 한다.


저자분은 질의응답 말미에 애써서 유하게, 한없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이렇게 답변하셨다.

"보통 강연을 가게 되면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럼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니까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아요. 대충 다 아시죠? 이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하시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그때와는 다른 분들이 오신 건데 제가 그 부분을 빼놓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아이를 무슨 내 인생의 방해물이나 절대로 이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 부모는 아마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래도 그 부분이 불편하셨다면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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