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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띠 Jul 27. 2020

혼놀 만렙, 혼자 이것까지 해봤다

혼자가 더 편해진 세상, 혼놀 만렙러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혼자'가 편하다. 어떤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할지 혼자 할지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혼자 하는 것을 선택하는 쪽이 부담이 덜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살갗 부대끼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에게 혼자라는 시간은 해방감과 재충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현대인들이 혼자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늘 조직 문화, 역할과 관계가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마치 사회 부적응자, 혹은 외톨이처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봐오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혼자 하는 것들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눈치 보이고 어색한 때도 있었다.



한창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 가기), 혼행(혼자 여행 가기)처럼 '혼자 ~하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혀가는 시기가 있었다. '혼놀 레벨테스트'로 내 혼자 놀기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보는 테스트가 인기 있을 정도였으니. 지금은 혼자도 하나의 문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중상의 레벨 정도는 해내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혼자'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더 이상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돌보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 전환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혼놀족 레벨테스트 [출처: 20s LAB]




약 10여 년 전, 내가 고등학생 일 때만 해도 혼자 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시기였다. 그때 내 인생 최초의 혼밥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예체능을 하는 학생이라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지 않고, 정규 수업만 마친 후 바로 미술학원에 갔었다. 석식을 먹고 가지 않던 터라 학원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처음으로 망설이다 지나가던 길에 보인 김밥천국에 들러 순두부찌개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훤히 내다보이는 큰 창을 가진 식당이었는데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혼자 밥 먹을 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하지(그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기라 휴대폰을 그리 오래 들여다볼 일도 없었다.) 같은, 지금은 쓸데없지만 당시엔 나름 굉장히 심각하고 심오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차츰 한두 번씩 혼밥을 시작하니 어색함도 사라지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혼자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자리가 없어 내 테이블에 착석한 또래의 여성분이 국밥과 함께 소주 한 병을 시켜먹는 장면이 생생하다. 진정한 혼밥 고수를 만나 너무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혼밥 레벨 테스트




점차 혼자가 과감해져 대학생 1학년 때는 혼자 '캣츠' 뮤지컬을 보러 갔다. 대학 교양 수업 중에 뮤지컬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오간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겐 꽤나 흥미로웠던지 그날로 뮤지컬을 예매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친구들에게 '캣츠라는 뮤지컬이 굉장히 재밌다는데, 혹시 같이 보러 갈 생각 없니?'라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당시 약 10만원 정도의 뮤지컬 티켓은 대학생들에게 꽤 부담이 되는 돈이었기에 선뜻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보러 가기로 했다. 그 날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오후 8시 공연이었고, 나는 그 날 조금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아 차분히 공연 소개 책자를 읽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할 만큼 단 한 명도 혼자 보러 온 사람이 없었다. 내 양 옆, 앞 뒤 모두 커플들이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가족 혹은 연인으로 누군가와 함께 온 사람들 뿐이었다.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내 안쪽으로 착석하기 위해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하고 내 몸을 뒤쪽으로 바짝 당기며 길을 터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앳되 보이는 내가 혼자 뮤지컬을 보러 온 게 신기한지 이상한 건지, 흘끗흘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내 한 달 아르바이트비의 절반을 털어 보러 온 뮤지컬을 보는 내내 다른 사람을 의식하다 끝나버렸다. 그리고는 뮤지컬이 막을 내리자마자 후다닥 도망가듯 빠져나왔다. 그게 내게는 아직도 꽤나 민망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로 혼행러 레벨테스트 [출처: my real trip]



남들보다 조금은 빠르게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지라 무언가를 혼자 하는 상황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져라 실컷 노래를 부르다 온다. 그리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혼자 여행을 간다. 때론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있는게 즐거울 때도 있지만, 때론 이렇게 홀로 진정한 내가 되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 사회에서 '혼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아닐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직장 생활이든 학교 생활이든 아니면 취미 생활이든 인간관계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크든 작든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양보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맞춰나가는 생활을 한다. 점심시간에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따로 있다 하더라도 대세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을 맞닥뜨리며 큰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와 경쟁이 강요되어온 사회에서 정작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소홀해졌고, 혼놀 문화는 개인 스스로가 그 관계를 복구해 나가려는 몸부림이자,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려는 욕구가 표출된 것이라고. 


혼놀 문화는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려는 현대인들의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 타인의 평가와 경쟁 등이 강요돼 온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정작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소홀해지고 말았다. 혼놀은 개인 스스로가 그 관계를 복구해 나가려는 몸부림이다.
[출처: 중앙일보] 밥·술·노래방도 혼자…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혼놀족’



나는 혼놀 만렙이다. 이제 당당하게 혼자여도 괜찮다. 친구가 없어서도 아니고, 함께 무언가를 한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다. 나는 그저 '혼자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좋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희미해진 나의 취향을 찾고, 개별로서 존재하는 나의 모든 생각들을 뚜렷하게 만드는 그 시간이 좋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오롯이 선택할 수 있고,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대화와 통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혼자는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진정한 혼자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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