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시리즈#3] 신채호

역사는 민족의 혼이다.

by Time Weaver

Ⅰ부. 1910년대 – 망국의 충격, 저항의 씨앗


#3 신채호


1. 붓을 든 청년, 시대의 어둠을 마주하다

신채호.jpg <단재 신채호, 출처: 전통문화포털>

1880년 충청남도 대덕에서 태어난 신채호는 어려서부터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한학을 익히고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전통적인 유학자로 성장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었습니다. 조선이 기울어가던 그때, 그는 글을 통해 세상에 맞서기 시작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 무렵,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신채호 역시 같은 신문과 여러 매체에 참여하며 조선이 처한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이에 협력하는 조선 내부의 친일 세력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며, 언론과 강연을 통해 국민의 눈을 깨우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조선 안에서는 점점 더 그런 활동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거세지자 그는 결국 국경을 넘기로 결심합니다. 붓을 들고 시작한 그의 길은 이제 새로운 투쟁의 무대로 향하게 됩니다.




2. 국경을 넘어 행동으로 쓰는 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자 신채호는 연해주, 만주, 중국 등지로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권업신문》의 편집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스스로 《신대한》을 창간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알렸습니다. 그는 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독립의 뜻을 퍼뜨리려 했습니다.

Declaration_of_Joseon_Revolution.png <의열단의 활동 지침서인 《조선혁명선언》,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그는 단지 글로만 싸우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23년에는 의열단의 요청을 받아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합니다. 이 선언문에서 그는 무장 투쟁이야말로 식민 지배를 끝낼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채호는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중심 노선에 비판적이었고,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조선의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활동은 끊임없는 위협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일제는 그를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었고, 결국 1928년 그는 중국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됩니다. 고문과 병고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신념을 꺾지 않았습니다. 1936년, 그는 감옥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끝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3. 역사는 민족의 정신이다


독사신론.jpg <단재 신채호의 《독사신론》 한글판 - 민족주의 역사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받는 저술이다.>

신채호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는 우리, ‘비아’는 외부의 침략자들입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정신의 뿌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의 책을 쓰며 조선이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은 원래 약한 나라였다고 주장할 때, 신채호는 오히려 고대부터 강한 주체성을 가진 나라였음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그의 글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그의 사상은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민족의 사상가’로, 남한에서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정신은 어느 한 쪽에 머물지 않고, 오랫동안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4.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간 사람


신채호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와도 쉽게 뜻을 맞추지 않았고, 때로는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도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습니다. 글을 썼다면, 그 글에 책임지는 행동도 함께했습니다.


그에게 역사란 단순한 과거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민족의 혼이자,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들려줄 역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크고 화려한 전쟁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신채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며, 혼을 지킨 이름이 바로 신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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