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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을 키우는 조직, 방관의 구조를 해부하다

방관의 틈, 침묵의 공기, 책임이 흐려진 조직의 속에서 성장하는 위기

by 파사리즘

조직이 침묵으로 반응할 때, 빌런은 더 단단해진다. 그들은 경계를 시험하고, 반응을 관찰하며, 점점 더 큰 영역을 점유한다. 그 결과,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닌 조직의 규범으로 위장된 악습이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빌런을 키우는 조직 구조’의 시작이다.

조직이 빌런을 방치하는 구조는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째는 심리적 회피의 층위,
둘째는 관리 시스템의 결여,
셋째는 책임 분산의 문화이다.


첫째, 심리적 회피의 층위는 “괜히 문제를 만들지 말자”라는 사고에서 시작된다.

조직 내 구성원들은 갈등을 불편해한다. 누군가 불합리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는 순간 불편한 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리더는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지혜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빌런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리더의 침묵은 그들에게 ‘허가’의 메시지로 전달된다.


둘째, 관리 시스템의 결여는 제도의 미비에서 비롯된다.

조직이 성과 중심으로만 운영될 때, 관계의 질과 문화의 건강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성과가 나쁘지 않으면, 문제 행동은 용인된다.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조직은 윤리적 기준을 잃는다. 결국 빌런은 ‘성과의 방패’ 뒤에 숨어 조직의 신뢰를 서서히 훼손시킨다.


셋째, 책임 분산의 문화는 리더십의 부재에서 나타난다.

“이건 인사팀이 알아서 할 일이지.”
“윗선이 정리해야지.
리더들이 책임의 경계를 외부로 밀어낼수록, 조직 내의 문제는 ‘누구의 일도 아닌 문제’로 전락한다.
그 사이, 빌런은 자유롭게 성장한다. 방관의 문화란 결국, 책임의 주체가 사라진 문화를 말한다.



빌런은 단지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신뢰 구조를 붕괴시킨다. 그들의 언행은 구성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이 조직은 옳지 않은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


이 인식이 퍼지는 순간, 구성원들은 침묵을 배운다. 정직한 사람이 입을 다물고, 성실한 사람이 에너지를 잃는다. 결국 조직의 건강한 다수는 떠나고, 문제적 소수가 남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조직이 빌런을 방치할수록, 구성원들은 리더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리더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문제를 묵인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리더의 침묵은 빌런의 언어보다 더 큰 소음이 된다. 조직은 점점 조용해지지만,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침묵의 부패이다.


리더가 가장 자주 하는 착각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문제 인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리더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는 경험은 그들에게 정당성으로 남는다. 또 하나의 착각은 공정함의 오용이다. 리더는 종종 “모두에게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 원칙이 오히려 문제 인물과 성실한 사람을 동일선상에 두는 불공정을 만든다.


공정은 동일한 대우가 아니라, 행동의 결과에 따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리더가 침묵으로 일관할 때, 진짜 공정은 무너진다.


방관의 대가는 늦게 찾아오지만, 반드시 찾아온다. 신뢰가 무너진 조직에서는 탁월한 인재가 머무르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침묵보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결국 방관의 구조는 인재 유출, 생산성 저하, 팀의 분열로 이어진다. 빌런을 제지하지 않는 조직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조직은 그 문제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방관의 문화는 조직의 DNA가 되고, 그 DNA는 세대가 바뀌어도 남는다. 새로운 리더가 와도, 시스템을 바꿔도, “말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직이 건강하다는 것은 단지 성과가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뜻이다. 리더가 빌런에 개입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직의 정의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행위이다.


리더는 침묵 대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행동이 우리 조직의 원칙과 맞는가?”
“이 말이 동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이 질문이 반복되는 문화에서 빌런은 자라지 못한다.

결국 조직의 건강은 리더의 침묵이 아닌, 리더의 기준이 얼마나 분명히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직은 말로써 무너지고, 말로써 다시 세워진다. 리더가 그 말을 회복시킬 때, 조직은 다시 호흡하기 시작한다.


빌런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그 구조는 방관에서 시작되고, 침묵으로 유지된다. 리더가 침묵을 깨고 개입하는 순간, 조직은 스스로의 병리 구조를 자각한다. 결국 빌런을 없애는 것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방관을 멈추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다. 조직은 문제를 외면할 자유가 없다. 문제를 직면하는 용기만이 문화를 구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가진 리더만이, 빌런을 키우지 않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 조직내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컴퍼니 빌런'을 리더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1화~10화까지 함께 다루었습니다. 11화부터는 팔로워의 책임과 역할에 중점을 두고 리더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From. 여러분과 함께하는 파사리즘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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