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내가 좋아하는 음식 2024040312
‘콩국수’
여름철 내 입맛에 딱 맞습니다. 얼음 몇 조각을 넣으면 어느 피서보다 낫다는 마음이 듭니다. 지난여름에는 콩국수를 먹지 못했습니다. ‘주변머리도 없지’ 한 그릇 사 먹으면 될걸, 아내를 조르다가 계절이 지났습니다. 다른 음식은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요것조것 생각하고 찾아냅니다. 식구들의 건강과 입맛을 맞춰볼 셈입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새로운 재료를 이용하여 변화를 시도합니다.
“맛있어?”
맛있습니다. 하지만 콩국수가 더 깊이 머릿속을 파고듭니다. 지난여름에 콩국수를 먹었어야 했는데, 지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앞에 있지만 생각은 여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찬 콩국수뿐만 아니라 더운 콩국수도 좋습니다. 따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돌게 분명합니다. 며칠 전에는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슬그머니 음식점 거리를 찾아갔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콩국수를 파는 곳이 없습니다. 여름철에는 흔히 보는 메뉴였는데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부탁하려고 했지만, 막상 도착하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콩국수를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콩 타작이 끝나고 나면 두부를 만들고 콩국수를 해서 먹었습니다. 입이 짧은 나는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일 먹는 보리밥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방학 때면 식구들이 농사일로 밖으로 나가고 나만 혼자 남을 때가 있습니다. 개울에서 친구들과 헤엄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부엌으로 향합니다. 식은 보리밥에 열무김치 국물을 붓습니다. 입에 한술 떠 넣자 새콤한 맛이 감돕니다.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동요를 들어보면 나만의 입이 아닌가 봅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공통의 맛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그 순간을 못 잊어 식사가 끝날 무렵 입가심으로 가끔 남은 김칫국물에 밥을 한 술 말아 입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입니다. 서울살이입니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신 후 일터로 나가셨다 늦은 밤에 돌아오십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일은 내 차지입니다. 기본적으로 다 준비된 식단이지만 밥을 짓는 것과 국을 끓이는 일은 내 몫입니다. 가끔 저녁을 먹기에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식사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밥이라도 제때 먹어야지.”
입맛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자 파래가 섞인 김을 꺼내 연탄불에 살짝 구웠습니다. 간장을 종지에 따랐습니다. 따스한 밥을 김에 샀습니다. 간장을 살짝 찍었습니다. 어느새 한 그릇 비웠습니다.
옛 생각에 며칠이나 타령하자 아내가 파래가 섞인 김을 사 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김을 찾기가 어려웠답니다. 얼마나 맛이 있기에 졸랐느냐며 내가 말한 대로 먼저 시식했습니다. 맛이 없는 것 같으면서 맛이 있다고 합니다. ‘맨 김에 맨밥’ 무미건조할 것 같지만 생각 외로 맛이 있습니다.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김밥의 메뉴가 다양해졌습니다. 김밥집이 많아지고 체인점도 늘어나 서로 맛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부속 재료에 따라 김밥의 이름도 늘어났습니다. 세계적으로 K-Pop 열풍이 불면서 외국인이 우리의 음식에도 관심을 끌게 되면서 인기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한국 음식점에서 김밥을 선보이는데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나는 김밥을 잘 사 먹지 않습니다. 누군가 시중에 파는 김밥을 건네줄 때입니다. 중학교 때 손수 싸 먹던 김밥만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지금의 내 손맛보다 못합니다. 내용물을 비교해 볼 때 시중의 김밥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김밥이 내가 만든 김밥을 밀어내지 못합니다.
나는 미식가가 아닙니다. 친구들의 성화에 함께 맛집을 찾아갔지만 흡족해한 때가 없습니다. 어쩌지요. 국숫집을 찾아갔을 때처럼 휴무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음식점 거리를 헤맸습니다. 다리가 아파질 무렵 참다못한 친구가 외쳤습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
그는 발걸음을 빨리하여 앞에 보이는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친구들이 쭐레쭐레 따랐습니다. 식사를 끝내자, 그 친구가 이 집이 맛집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도 미식가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시장이 반찬’이라는 음식 말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좋아하는 음식을 굳이 말하라면 보편적으로 깔끔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