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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 참맛을 알까? 20240313

by 지금은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유난을 떠는 사람도 있습니다. 맛의 감별사라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때는 촉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의 상술 같습니다. 요즘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이곳저곳에서 음식 소개가 많고 맛 자랑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자주 뜨입니다. 그게 그거지 하면서도 잠시 눈을 파는 일이 있습니다. 맛을 찾는 사람은 꼭 탐정 같습니다. 무슨 범죄의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마음과 눈을 한곳에 집중시킵니다. 맛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은 보물이라도 되는 양 숨기기가 바쁩니다. 못 이기는 척 하나하나 드러내놓지만 끝내 핵심이라고 여기는 것 하나쯤은 가슴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습니다. 약으로 친다면 약방의 감초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할까. 모릅니다. 나는 맛에 특별한 관심이 없습니다. 맛있는 거야 분명히 있겠지만 특별히 목숨을 걸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부지런히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는 나름대로 삶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 사람의 행태이겠지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제각기 다를 뿐입니다. 맛에 정신을 파는 사람도 있겠지만, 옷에 신경을 쓰는 사람, 오락에 빠진 사람 등 다방면에 걸쳐 제각각 추구하는 게 있게 마련입니다.


입맛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중에서도 커피입니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합니다. 처음부터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커피를 알게 된 후로 이것저것 맛을 보았는데 맛이 아메리카노에 정착했습니다. 특별히 맛을 알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입맛에 맞아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좋아 좋다 하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스스로 세뇌 교육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하고 며칠 지났을 무렵입니다. 공부를 끝내고 동네 친구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봄볕이 따스한 온기를 한 아름 안았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쫄래쫄래 따라옵니다. 봄이 입김을 목덜미와 등에 불어넣습니다. 우리가 산모퉁이를 돌 무렵 자동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프 한 대가 뒤에서 좁은 길을 따라 가볍게 뛰는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다가옵니다. 모습을 보니 군인들입니다. 미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겁을 먹고 지프가 지나가도록 논둑으로 올라섰습니다. 이때 우리가 있는 논바닥을 향해 공중으로 뭔가 날았습니다. 세 손가락을 합친 크기의 약봉지 같습니다. 대여섯 개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손을 흔드는 사이에 차는 저만치 멀어졌습니다.

우리 동네와 반대편에 사는 친구들에게서 소문을 들었습니다. 자기 동네에 미군이 가끔 오는데 ‘기브 미 짭짭(Give me, cops)'하고 소리치면 껌이나 과자를 준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나도 그들이 지나가면 한 번 소리칠까? 했는데 그동안 지프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군인들은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을까요? 말하기도 전에 무엇인가 우리 앞에 던져주었습니다. 물건을 집으며 친구와 서로 말을 건넸습니다.


“미군은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


“그런가 봐, 좋기는 한데 던져주는 것은 좀 그렇다. 차에서 내려서 줄 것이지.”


겉면에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우리 글자와는 달라 읽을 수가 없습니다. 먹을 거라는 생각에 귀퉁이를 찢었습니다. 검은 내용물입니다. 입에 대보았습니다. 쓰디씁니다. ‘퉤’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친구들이 말에 의하면 먹을 것을 준다고 했는데 먹을 게 못 되나 봅니다. 손에 들었던 것을 바람 부는 곳을 향해 휙 던져버렸습니다. 나중에 커피를 알고 나서 내가 맛을 보았던 게 엑소 프레스의 원액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쓴맛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아이들이 싫어하는 씀바귀나물을 어려서부터 잘 먹었습니다. 익모초를 달인 물이나 환도 건강에 좋다는 말에 거부감 없이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군인이 준 물건의 맛을 본 다음 뱉고 말았습니다. 낯선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알면 거부감이 덜하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엑소 프레소, 아메리카노가 내 쓴맛에 동참합니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은 참맛을 알까요. 쓴맛입니다. 쓴맛, 신맛, 짠맛, 단맛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식적인 맛 이외에도 다른 표현이 많습니다. 구수하다. 매콤하다. 얼큰하다, 화하다, 찝찔하다. 화끈하다는 둥, 하지만 맛의 표현에 적합하지 않은 몇몇 단어도 있습니다. 요즘 자극적인 맛에 길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처럼 쓴맛을 찾는 사람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이 왜 쓴맛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모든 맛을 감춰주니까.

‘그럼 쓴 게 약이라는데, 너는 약을 매일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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