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새를 좋아하나요 20240322
입춘 추위를 한다지요. 춘분 추위도 할까요? 도서관에 가는 길에 공원에 들렀지만 새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까치 몇 마리가 보입니다. 서열다툼을 하는지 아니면 짝을 차지하기 위한 마음인지 두 마리가 잠시 엉겨 붙어 몸싸움을 합니다. 날카로운 발톱을 상대에게 보이며 날갯짓과 함께 공중부양을 합니다. 쉽게 보는 모습이 아니라서 나무 뒤에 숨을 죽이며 쳐다보는 찰나 한 마리가 날아올라 나뭇가지로 옮겨갔습니다. 순간 바람이 이는 듯했지만 소리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잠시 도서관에 가는 것을 잊은 채 그 흔한 까치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내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이마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메타세쿼이야 나무 꼭대기의 텅 빈 까치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춘분날 기온이 높아 완연한 봄이구나 했는데 다음 날부터 새벽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다음 날은 더 추웠습니다. 춘천에는 생각지도 못한 영하의 기온과 함께 나무들이 신부처럼 흰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바닥의 카펫도 흰색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세계가 계절을 거스르는 느낌입니다. 꽃은 온데간데없고 새들마저 숨어버렸습니다. 계절의 철없는 짓에 울상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 축제를 열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나 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들도 마음이 쓰이는지 지저귐이 잦아들었습니다.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명새, 박새, 오목눈이, 어치, 흔한 비둘기와 까치, 참새도.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림책이나 동화를 좋아합니다. 도서관에 들르면 소설책이나 에세이 책을 빌리며 어린이 방을 기웃거립니다. 이달의 책 전시대에서 「첫 번째 질문」이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3월이라서 몇몇 책과 함께 놓았을까 하고 넘겨짚었습니다.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의 입학식이 있는 달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면 궁금한 게 많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도 많아지겠지요. 어린이들은 어떤 질문을 할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췄습니다. 제목이 「첫 번째 질문」 궁금한 게 하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책장을 넘기자 다양한 질문이 쏟아집니다. 세어보니 30여 가지나 됩니다. 지은이는 나름대로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어린이에게 묻고 있지만 어른에게도 소용이 되는 질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 속의 질문 중 첫 번째로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새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하는 물음입니다. 이유라고요? 유년기를 산촌에서 지냈기에 새소리에 익숙합니다. 장년기의 몇 년은 섬에서 지낸 일이 있습니다. 산은 수풀과 네발 달린 짐승과 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새소리와 함께했습니다. 고향집입니다.
“빨리 일어나.”
먼동이 트기 시작 전부터 참새들의 시위가 시작됩니다. 뒤란 대나무밭에서 가지를 뒤흔들며 바람에 소리를 얹습니다. 오목눈이가 창문 앞 골단추나무에 앉아 나를 부릅니다. 박새도 함께합니다. 라디오도 없는 산촌은 새소리마저도 없다면 먼바다만큼 조용합니다. 햇살이 초가지붕 위에 내리면 꾀꼬리의 울음이 동네의 안부를 묻습니다. 뻐꾸기도 동참합니다. 가끔 산비둘기가 걱정거리가 있는지 음산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여름날 박쥐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밤이면, 잠자리에 들었던 식구들이 등잔불을 밝힌 채 한동안 소란을 떨기도 합니다. 겨울밤입니다. 부엉이가 울음을 이어받았습니다. 건너 마을에 놀러 갔다 흰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둥구나무 밑에 다다랐습니다. ‘부엉’ 소리가 멈췄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눈빛을 쏟아대더니만 놀랐는지 ‘푸드덕’하고 날갯짓하며 저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달빛에 그림자도 함께 따라갑니다. 몸이 움찔하며 머리가 쭈뼛해집니다.
내가 잠시 지냈던 섬에서의 새소리는 또 다른 정취가 있습니다. 집이 산등성이에 홀로 있다 보니 수풀 속에 숨어있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고향집보다 한 발짝 더 가려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나무는 새들의 운동장입니다. 새벽뿐만 아니라 달 밝은 한밤중에도 새들의 지저귐이 이어집니다. 내가 방을 비운 사이에 들어와 놀았어도 나와 할 이야기가 남아있나 봅니다.
어느 날 새소리가 조금 멀어졌습니다. 시끄러울 때가 있다고 했더니만 아랫집 사람이 말없이 창가의 큰 나무를 베어버렸습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뒤 곁에 있는 오가피나무를 파서 창가로 옮겼습니다. 한 해가 지나자 나와 새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거진 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숨바꼭질을 합니다. 몇 마리가 고갯짓 합니다. 새소리를 듣노라면 내가 좋아하는 기악곡을 감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서 와’
창가에 앉은 새를 향해 몸을 낮추고 손을 내밉니다. 손바닥에는 곡식 몇 알이 담겨있습니다. 한 발짝만, 한 뼘만 더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