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봄기운에 20240324
어제까지도 봄을 시샘하는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강원도 일부 지방의 바닥에 흰 카펫을 드리우고 신부의 드레스처럼 나무마다 흰 눈을 입혀놓았는데 아침 일기 예보를 보니 간데 온데간데없습니다. 이제는 겨울이 두 손 두 발을 들었나 봅니다. 바깥공기를 쐬러 집 앞으로 나가니 축대에 붙어있는 돌단풍의 흰 꽃망울이 올망졸망 비누 거품만큼이나 부풀었습니다. 며칠 사이에 꽃잎을 활짝 벌리겠다 싶습니다. 산수유도 좁쌀을 모아놓은 듯 무더기 무더기로 노랗게 꽃눈을 내밀었습니다. 만개하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나뭇가지들이 꽃을 피울 거라며 너도나도 고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화초라야 내세울 것은 없지만 좁은 실내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다육식물 몇 개가 봄 냄새를 알아차렸나 봅니다. 겨울과는 달리 생기를 얻은 듯 이파리가 짙어졌습니다. 오랜만의 눈 맞춤입니다. 가지런히 모양새를 정리하며 물을 줍니다. 옆으로 키가 껑충한 화분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서있습니다. 아이비입니다. 재작년에 꽃집 앞을 지나가다 별꽃 아이비라는 문구에 얼어붙은 듯 잠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앙증맞은 화분 앙증맞은 이파리가 갓난아기의 얼굴을 한 채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무엇엔가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가 화분을 들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좀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영양분이 충분했기 때문일까요. 한 달 사이에 부쩍 자라 탐스럽습니다. 화분 밖으로 나온 줄기가 바닥을 향해 늘어졌습니다. 장마에 오이 자라는 듯하더니만 봄기운이 빨리 자라라고 아이비의 마음을 부추겼나 봅니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부쩍 자라는 것을 보니 꺾꽂이하여 숫자를 부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줄기 몇 가닥을 잘라 물병에 꽂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뿌리가 내리고 옮기면 아이비 화분 하나가 늘어납니다. 며칠이 지나자, 생각대로 뿌리가 보입니다. 물에 잠긴 줄기에 희끗희끗 벌레처럼 작은 것이 점차 길어집니다. 이럴 때는 아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 결혼한 자식이 없습니다. 아이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함께 관찰을 하면 자연스레 식물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겨울에 무를 반으로 잘라 속을 일부분 파내고 거꾸로 매달아 물을 부어놓은 일이 있습니다. 틈틈이 물을 보충해 주었더니 무 잎이 자라 하늘을 향했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이라도 있었다면 내 지식을 전달할 좋은 기회인데 하고 무를 보며 말했습니다.
‘무를 거꾸로 매달았어도 잎이 하늘로 향하잖니, 이게 해굽성이라는 거다.’
물론 땅굽성도 이야기했겠지요.
기분 좋게 병에 있는 아이비를 뽑아 화분에 옮겼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점차 아이비의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사그라지는 아이비를 뽑아 다시 병에 옮겼습니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결론을 얻었습니다. 너무 서두른 탓입니다. 뿌리가 많아지고 길게 자라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 때가 있는 법이지 하는 생각으로 이후 아이비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큰 관심을 갖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생각입니다. 생각이 맞았을까요. 어느새 긴 줄기가 화분을 넘어 바닥으로 내려와 창틀을 향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줄기의 군데군데 잎이 떨어져 앙상한 곳이 눈에 뜨입니다. 그냥 두기에는 화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줄기를 잘라 전처럼 물병에 꽂았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한동안 모른 척해야겠습니다. 나는 나무의 꺾꽂이를 해본 경험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모과나무입니다. 열매가 열리는 가지 떼기를 하면 묘목에 비해 열매를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앵두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기다림이 필요할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 양봉을 할 때입니다. 짧은 기간에 벌통을 많이 늘리고 싶었습니다. 깊은 지식도 없으면서 강제로 분봉했습니다. 벌이 건강하고 숫자가 많아야 하는데, 욕심이 나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벌의 군집으로 볼 때 한 통만 늘리면 적당하지만 억지로 세 통을 만들었습니다. 우기가 돌아오자, 벌들은 먹을 게 부족해 힘을 잃었습니다. 영양부족으로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모두를 합쳐 한 통으로 만드는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결과입니다. 가장 좋은 분가는 스스로 알아서 살림을 나게 하는 자연 분봉입니다.
베란다의 화분을 정리하며 다육식물을 바라봅니다. 작다는 이유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일까요. 화분이 비좁다 싶을 때마다 하나둘 옮기다 보니 몇 년 사이에 하나의 분이 아홉 개로 늘었습니다. 어느새 봄이 되었습니다. 자연에서도 배웁니다. 기다림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