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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진달래 길 20240326

by 지금은

‘갈 때 보지 못한 진달래꽃 올 때야 보았네.’


아침 일찍 목적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삼촌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내 어릴 때 청년이던 분이 어느새 백 세를 넘겼습니다. 역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편편하고 곧은 인도를 놔두고 한 아파트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울타리를 끼고 고불고불 돌고 돌아 후문을 나서면 역전과 연결됩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처럼 하늘을 올려보아도 햇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둘레둘레 주위를 둘러봅니다. 늘 푸른 사철나무들 사이로 버드나무가 잎을 내밀고 명자나무도 부스스 눈을 뜨고 있습니다. 상사화는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달래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웃 고장에는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손님을 맞이한다는 데 겨울이나 지금이나 별다름이 없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며 중얼거렸습니다.


‘뭐 하는 거야, 아직도.’


몇 년 전입니다. 친구를 만났더니 가까운 곳에서 진달래꽃구경을 원 없이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시골에라도 다녀왔느냐고 했더니만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며 부천의 원미산을 가리킵니다. 내가 한동안 살았던 곳에서 걸어서 불과 30여 분 거리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생각에 다음 날 아내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옛날의 겉모습이 아닙니다. 산의 모양은 변한 게 없지만 나무가 바뀌었습니다. 잡목의 숲에서 벗어나 진달래 일색입니다. 온 산이 연분홍 카펫으로 물들었습니다. 꽃 사이의 인도를 따라 사람들이 긴 띠를 이루었습니다. 무더기 사이사이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에 바쁩니다. 조금 일찍 올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깝습니다. 절정을 지나 꽃잎이 바닥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한동안 내려다보았습니다. 꽃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사이사이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 무리는 드라마라도 찍을 셈인지 옆에 텐트를 치고 한복과 무대복을 갈아입고 나와 동영상을 촬영합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내년에는 좀 일찍 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곧 잊고 말았습니다.


삼촌을 뵙고 다시 그 아파트의 오솔길로 들어섰습니다. 갈 때와는 달리 마음도 발걸음도 느긋해졌습니다. 짧은 길을 고무줄처럼 늘여가며 천천히 발길을 옮깁니다. 따라서 눈도 여유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는 양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펴 갑니다. 아침에 보았던 것들이 느린 눈을 향해 모여듭니다. 사철나무, 측백나무, 아파트 벽의 담쟁이덩굴, 상사화가 꽃을 피우던 자리, 드디어 진달래가 좁은 띠를 이루며 늘어선 길에 이르렀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꽃이 활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많은 꽃망울 사이에 딱 두 송이입니다. 주춤 발을 멈추었습니다. 원미산 진달래는 물결을 이루었다는데 이들은 아직도 겨울 꿈속에 있나 봅니다. 보아줄 사람이 많지 않아 느긋한가 봅니다. 아파트 벽이 봄 햇살을 나눠주지 않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고향마을이 생각납니다. 앞에 있는 돌 위에 엉덩이를 기댔습니다. 나무하는 삼촌을 따라가 진달래 무더기 속에서 잠시 술래잡기도 했는데, 일요일 날이면 동네 아이들과 활짝 핀 꽃 사이를 수없이 누볐는데, 꽃잎을 따먹고, 꽃다발을 만들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꽃술 따기도 했는데, 돌아올 때는 꽃을 한 아름 꺾어와 항아리에 꽂기도 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몇 해 동안 진달래꽃과 멀어진 일이 있습니다. 학교의 친구들 사이에 소문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말씀입니다.


“진달래꽃이 피면 산에 가지 마라.”


문둥이들이 진달래꽃이 피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산에 오르는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말인지는 밝혀진 게 없지만 바쁜 농번기를 맞아 아이의 작은 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진달래가 활짝 핀 어느 날 구걸을 하기 위해 나환자(癩患者)가 동네에 나타났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아이들이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의 오후 수업이 중지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운동장에 전교생을 모아 동네별로 줄을 세웠습니다. 형들이 앞장서고 선생님 한 분씩 뒤를 따라 동네를 향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농번기 방학을 했습니다.


“혼자 산에 가지 마라.”


아이들의 불안이 없어질 때까지는 얼마 동안 선생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나환자라고 해서 꽃을 싫어하겠습니까. 우연히 산기슭의 진달래 속에 있는 나환자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 띄었나 봅니다. 아이의 간을 빼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허황된 소문이 꼬마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봄이면 온 산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던 그 흔한 진달래가 사라졌습니다. 수풀이 우거지면서 큰 나무들에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나환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달래꽃 피면 산에 가지 말라 했는데 배낭을 챙깁니다. 축제를 연다는 소식에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내일은 김소월의 영변 약산이 아니고 강화 고려산에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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