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수직 농장 20240326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구석진 진열대의 공간에 상추가 꼿꼿이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판에 모를 꽂아 놓은 모습과 흡사합니다. 줄과 열을 지어 전등 불빛 아래 싱싱한 모습을 보입니다. 화초도 아니고 상추라는 생각에 잠시 머물러 자세히 보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반을 쌓아놓은 것처럼 층층으로 식물이 자랄 공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이 연상됩니다. 식물이 들어찬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흙이 없습니다. 물가꾸기입니다. 큰 건물에서 토마토와 딸기의 물가 꾸기 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실제는 아니고 텔레비전을 통해 농부가 농사의 과정을 보여 줄 때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직형 농장의 모델이랍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평형 식물 가꾸기를 했습니다. 별 시설 없이도 너른 땅을 이용하여 작물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구의 팽창과 도시화로 공간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적은 땅을 효율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 끝에 빌딩이나 아파트에서 사람이 생활하는 것처럼 작물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수직형 농장을 떠올렸습니다. 외국말로 버티컬 팜(vertical farm)이라고 합니다. 작물 재배용 선반을 수직으로 여러 단 쌓아 올려 농사를 짓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2010년 때만 해도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시설비와 관리비 부담으로 기대를 하지 못하고 연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수직농장이 도입된 지 어느덧 올해로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수직농장 업체가 생겨났고 제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세계 처음으로 딸기를 상업 재배하는 한 수직농장은 폐터널이라는 공간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투자·운영비를 절감해 작년에 값진 이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컨테이너 모듈형 수직농장을 개발해 중동 등 수출을 늘려가는 업체도 있습니다.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버섯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고급 천연가죽으로 패션 명품과 협업을 시도하는 업체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형 수직농장의 모습입니다. 수직 농장은 작물을 키우는 곳이지만 농업진흥 구역 안에는 설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농지법이 걸림돌입니다. 따라서 설비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일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농업 분야에 있어서 선진국에 뒤져있습니다. 종사자의 말에 의하면 수직농장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여주면 다른 선진국보다도 앞설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설비뿐만 아니라 좋은 품종을 개발하고 가꾸는 일을 배우고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갑니다. 그동안 외국에서 수입에 의존하던 농작물이나 과수 화훼 품종을 개발하여 소득 증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수출하여 로열티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라 국민들의 삶이 어렵다고 아우성칩니다. 정치가들 사이에 입씨름을 벌입니다. 전 정부의 관계자와 현 정부의 사람들 사이에 옥신각신하기도 합니다. 한 정치가는 파단을 들고 값이 너무 비싸다며 큰 소리를 냅니다. 오른 게 파뿐이겠습니까. 일부 채소와 과일도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의 겨울이 생각납니다. 비닐하우스가 없던 때 겨울철 채소는 땅에 묻어둔 무와 배추가 전부입니다. 겨울철 채소를 대신할 먹을거리를 위해 보충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묵나물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파를 방안에 들이고 필요할 때마다 줄기를 잘라 사용했습니다.
생활환경이 좋아진 요즘 가정에는 화분 몇 개쯤은 있습니다. 겨울철에도 예쁜 꽃을 피웁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좋지만 채소를 가꾸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파, 상추를 비롯한 몇 가지 채소는 쉽게 키울 수 있습니다. 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직농장을 이용한 상자형 물가꾸기를 하면 어떨까 권합니다. 간단한 시설에 온도 조절이 가능하고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배양액들을 구할 수 있으니 키우는 재미도 있고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에게 권하기만 해야겠습니까. 베란다를 살펴봅니다. 좁기는 해도 수직으로 층을 쌓아 올린다면 가능하리라 짐작합니다. 구석에서 겨울철 가습기 역할을 했던 간이 분수기를 꺼냈습니다. 화분에 시비하던 고체 영양제도 들여다봅니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니 시중에서 파는 완벽한 시설물보다 스스로 생각해서 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때가 있습니다. 다소 번잡스럽기는 해도 해냈다는 마음이 나를 뿌듯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체가 다른 나라에 도시 전체를 기획하고 수출하는 시대에 우리 농업이라고 해서 안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제는 사막에서도 농사를 짓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직형 농장은 날씨 변화에 따른 풍수해를 막고 일조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병충해의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와 농업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합심하여 아파트형 농업이 성공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