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당신들 때문이잖아 20240409
노인회관 식당에서의 일입니다.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한 사람이 뒤에서 말을 겁니다.
“이 줄이 밥 먹는 줄인가요?”
“여기는 식권을 사는 줄이고, 바로 옆이 배식받는 줄입니다.”
이곳이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다며 이 것 저 것 물어봅니다. 이용 방법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한동안 몸이 불편해서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답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좀…….”
말끝을 흐립니다. 그의 말에 그의 옷차림에 관심이 갔습니다. 가죽 잠바에 노랑과 짙은 갈색이 교차한 체크무늬 바지입니다. 요즘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이었습니다. 뭐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듣기 좋아하라고 명품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예전에는 그랬다는 겁니다. 철 지난 유행입니다. 한 때는 멋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입니다. 그의 옷차림이 바뀌었습니다. 반응을 보였더니 지금의 유행에 어울리지 않아 새 옷을 하나 장만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이래 봬도 옛날에는 명품만 입었다는군요.
신문에서 어느 기자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잘난 체하는 당신들 한국 사람들이잖아.”
한국에서는 부유함을 뽐내는 게 왜 미덕일까. 체면이 전부인 한국에서는 부자처럼 보이려는 게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체면을 중시해 왔습니다. 예를 보면 ‘의식주’를 들 수 있습니다. 이웃 나라 중국은 ‘식의주’에 비해 우리는 ‘의’가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는 길거리나 차 안 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명품이라 불리는 액세서리나 옷, 가방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일까 어린이들까지도 유명 상표가 붙은 옷을 착용하고 학교에 갑니다. 엄마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학부모 회의라도 열리면 명품으로 치장하고 패션쇼를 하는 양 모습을 선보입니다. 뉴스에서 종종 명품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이에 현혹되다 보니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 외화로 낭비된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내가 가진 돈이 많아서 쓰고 싶은 대로 쓰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위화감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국이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라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2022년 소비액이 약 22조 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외모의 과시가 문화적 부작용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한때 명품으로 학부모의 허리가 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백만여 원에 이르는 긴 거위 솜털 외투가 등하굣길을 휩쓸었습니다. 과시욕은 이뿐만 아니라 겉옷과 신발, 가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명품을 걸친 집단 또래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유행 추종 현상, 다시 말해 다수의 선택에 편승하는 심리적 효과입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Z세대는 저축보다는 당장의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명품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을 따라갈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일부는 대리만족을 위해 모조품에 눈을 돌렸습니다. 해마다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조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들과 정부의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어느 시장에서 모조품을 만드는 사업체가 발각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생필품으로 위장하여 들여오려다 세관에서 덜미를 잡혔습니다.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실제 금액으로 치면 몇 백억 원에 이릅니다.
아내와 벚꽃 구경을 간 일이 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음식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실 때입니다.
“이거 명품이잖아.”
옆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우리를 힐끔 곁눈질합니다. 눈을 마주치기 싫어 창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의 딸이 사준 거라고 합니다. 덧붙여 너만 알고 있으라고 언질 줍니다. 모조품이라며 이 가방의 진품을 든 사람만 안다고 했습니다. 더 아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뿐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 기분이 좋답니다. 벚꽃이 한잎 두잎 바람을 탑니다. 아내가 자신의 가방을 툭 쳤습니다.
‘이까짓 게 뭐라고, 들기 편하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