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화전민의 고향 20240411
사다리를 추녀에 걸쳤습니다. 낡아 색이 바랜 모습은 위태로워 보입니다. 사다리만큼이나 그의 몸도 낡고 가냘프게 느껴집니다. 조심조심 사다리를 올라 굴뚝 쑤시기를 들어 올렸습니다. 솜방망이처럼 긴 대나무에 헝겊을 둥글게 뭉쳐 매달았습니다. 막대기와 천이 일체입니다. 굴뚝 속으로 대나무를 밀어 넣었습니다. 굴뚝 청소를 위해 막대기가 오르내리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갑니다.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씩은 하는 일입니다. 그름이 굴뚝에 엉겨 붙으면 아궁이의 불이 고래로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막 일을 끝내고 사다리를 다 내려왔을 때 휘청하고 사다리가 균형을 잃었습니다. 발을 헛디뎠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십 년 감수했네.”
아내가 마루에서 일회용 가스버너에 물을 끓여 커피믹스를 타는 중입니다. 남편을 부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들어오자 반가운 손짓을 합니다. 봄이 왔지만, 강원도의 산골이 게으름을 피웁니다. 남쪽에는 꽃이 만발했다는데 골짜기의 남은 눈은 아직도 모습을 빠끔 드러내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위를 오려봅니다. 대들보의 상량에는 150년 전의 굵은 글씨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세월에 찌들어 나무의 색이 바래었지만 아직도 검은색 그대로입니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들어온 산골, 20대 초반에 아내와 결혼하여 함께 산지 60회가 다가옵니다.
시내에 나갔다 돌아온 아내가 남편에게 슬며시 운을 띄웠습니다.
“우리도 시내에 나가 아파트에 살면 좋지 않겠소.”
곁에 있는 남편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이 없습니다.
주위에는 어느덧 새집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너른 터에 큰 집들이 자신들의 사는 길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 별장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던 집들이 허물어지고 정든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제는 맨 위의 외딴집으로 동네의 하나 남은 옛집이 되었습니다. 자식들이 출가하여 이제는 두 식구가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내의 불평이 가끔 쏟아집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남편의 의지가 굳건하니 아파트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지만 꿈에 불과합니다.
“나 죽으면 마음대로 해요.”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이니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떠날 수가 없답니다. 아내도 정든 마음이야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여 함께 산 수십 년이니 어디 손이 가지 않은 데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만찬을 차렸습니다. 부부가 함께 시장에 가서 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커피믹스를 제일 먼저 샀습니다. 고등어 한 마리 샀습니다. 온몸의 아픔을 해결해 주는 파스도 뭉텅이로 샀습니다. 버스가 드나들지 않은 산골은 시내까지의 나들이가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택시가 정기적으로 드나듭니다. 예약을 해야 합니다. 이빨이 아프니 시내를 가는 길에 병원에도 들리고 시장에도 가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택배 물품이 주인 없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자를 열었습니다. 냉장된 주머니에 소갈비가 담겨있습니다. 아내가 물건을 꺼내 이리저리 살폈지만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갈비의 포장에 상표의 이름이 있지만 누구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왜 보냈을까 하고 궁금해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외지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이 보낸 것이랍니다. 남편은 손질한 고등어를 아궁이로 가져갔습니다. 석쇠에 올려놓고 왕소금을 듬성듬성 뿌렸습니다. 아내가 고운 소금이 좋다고 했지만 왕소금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부엌에서 고기를 끓입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렸습니다. 남편이 무거워 보이는 상을 들고 들어가 방 안에 앉았습니다.
다음 날 부동산 중개사가 손님을 데리고 방문했습니다.
“땅값이 많이 올랐어요.”
커피믹스를 대접하는 아내의 표정이 솔깃해집니다. 남편이 표정을 읽고 말했습니다.
“생각이 없어요.”
그들이 떠나자, 나 없을 때 말을 섞지 말라고 다짐합니다. 화가 난 그는 집에서 떨어진 마을 회관에 들렀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섰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말도 아내의 생각과 같습니다. 땅값이 올랐다는데 팔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지내는 게 어떠냐고 합니다. 부아가 치밉니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침을 놓았습니다.
잠시 집을 지나쳐 골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져 흔적마저 희미한 숯가마 터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의 얼굴,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늘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무거운 참나무를 가마터 안으로 들였지, 밤처럼 까만 숯과 그을린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솥 아궁이에 불을 때고 물을 데웠습니다. 들통에 물을 담아 샘으로 내려갔습니다. 편하지 않은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머리를 감아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내가 수건을 내밀었습니다.
“이 추운데 왜 머리를 감아요. 어제 오후에도 감았으면서.”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떠나기 싫어하는 자와, 떠나고 싶어 하는 자의 갈등입니다. 아내는 추워 보이는 남편을 위해 커피믹스를 타서 내밀었습니다.
“당신 마음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아파트에서 사는 건 편하지만 지옥이 될 게 분명한걸, 산골에 길든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 있겠어.”
얼마 전 아내를 위해 마당 한쪽에 현대식 화장실을 지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살림집인 줄 착각하고 그곳으로 가 사람을 찾으며 문을 열기도 한다지요. 남편은 기계톱을 들고 바깥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쌓아놓은 통나무가 잘립니다. 아직도 추위가 남았어요. 오늘 밤에는 새벽처럼 아궁이의 불이 이글거릴 겁니다. 춥고 깊은 밤에는 숯불에 익힌 군고구마가 제격입니다. 아내가 은박지를 벗겨냅니다. 어깨를 마주한 남편이 아내의 등을 토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