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꽃잎을 보네 20240412

by 지금은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내/ 고운 빛은 어디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노랫말 가사의 일부입니다. 나뭇가지를 감싸던 하얀 물결이 탐스러워 눈을 떼지 못했는데 어느새 꽃비가 되어 바람을 타고 함박눈 송이처럼 살며시 바닥에 내립니다. 바닥에 제법 수북이 쌓이고 장난꾸러기 봄바람에 다시 한번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하늘을 보던 내 눈이 요즘은 바닥으로도 옮겨갑니다.


요즘은 하늘도 땅도 온통 꽃물결입니다. 노랑꽃 산수유, 개나리, 민들레. 빨강 꽃 재밀화, 진달래, 명자나무. 하양 꽃 목련, 벚꽃. 자주 꽃 제비꽃, 냉이꽃, 연두 꽃 능수버들, 모과. 이름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어도 밤이 지나면 어느새 새로움이 펼쳐집니다. 앞다투어 고개를 내미는 대지의 생물들이 나를 다른 세상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달라지는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면 하루에도 몇 차례 붓을 들어야 할 겁니다. 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요. 스마트폰을 수시로 열어 발길이 닿는 대로, 보이는 대로, 느낌이 다가오는 대로 버튼을 눌렀습니다.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지금은 시큰둥한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았습니다. 좋은 게 너무 많아도 탈입니다. 맛있는 음식만 먹다 보면 맛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듯 봄의 정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나 봅니다. 사진은 시간을 단축하는 의미는 있지만 짧은 순간이라 재미가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봄이란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져보고, 들어보고, 맛도 보아야 합니다. 가지에서 움트는 초록 눈을 보면서 기둥을 쓰다듬어봅니다. 겨우내 죽은 척하더니만 기운을 축적하고 있었던 거야. 벙어리처럼 조용히 몸을 움직이며 먹이를 찾아 헤매던 참새, 방정맞게 짹짹, 초싹대는 몸짓, 이제야 살 것 같아 하는 날갯짓입니다. 포르르 포르르 자리를 옮기는 모습에서 건강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봄의 맛은 어떨까요? 뭐 봄맛이지요.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상큼하다고 하기도 뭣하고 쓰다고 말하기도 뭣합니다. 시큼하다고 하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냥 이 맛 저 맛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봄이라면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달래, 냉이, 씀바귀, 맛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에 쑥, 고들빼기, 홑잎 나물, 망초, 찔레순도 있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는 진달래 동산에 꽃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을 눈여겨보다가 암술과 수술을 떼어버리고 꽃잎을 입에 넣었습니다. 맛이라고요? 별맛이 없습니다. 고향의 앞산 뒷산에서의 맛 그대로입니다. 봄의 끝자락으로 달려가다 보면 아카시아꽃을 보게 됩니다.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변함없는 과정입니다. 아카시아 꽃잎을 한 움큼 훑어 입에 넣습니다. 풋내가 나면서도 향긋한 맛이 입안에 감돕니다. 할머니는 해마다 한 번쯤은 싱싱한 아카시아꽃에 쌀가루를 입혀 쪄냈습니다. 쑥버무리를 연상한다면 이해되리라 여겨집니다. 쑥의 향이 입안을 감돌 듯, 아카시아 향도 입안에 감돕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잊을 수가 없지만 두 가지를 비교하면 그래도 쑥을 앞에 놓고 싶습니다.


재작년에 할머니의 손맛이 생각나서 쑥버무리와 아카시아 버무리를 만들어 먹은 일이 있습니다. 아내의 손에 내 입맛을 보탰습니다.


“별거 아니네.”


그렇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추억의 맛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조미료에 길든 맛이 옛 맛을 좋다고 하겠습니까. 건강한 맛이라는 말로 대변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입도 요즘의 맛이 더 좋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추억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별식, 별맛이라는데 의미를 두면 점수를 높일 수 있습니다. 봄을 한마디로 표현이야 수 있겠습니까.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는 오감에서 맛을 가져오게 됩니다.


“엄마, 이게 뭐야.”


“개나리꽃,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엄마, 이게 뭐야.”


“글쎄, 이게 뭐더라.”


아이가 빨간 꽃을 만지다 말고 하나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옆을 지나치던 나는 대꾸를 했습니다.


“명자꽃.”


“명자꽃, 할아버지가 명자꽃이래.”


아이도 찾아오는 봄을 서서히 알아가겠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