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친절도 병일 때 20240705
“이 버튼을 누르시면 되는데요.”
“알아.”
화난 목소리가 그의 목덜미를 타고 흘렀습니다. 그의 억양을 감지하는 순간 더 이상 말을 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예.”
뒤따르던 발걸음을 늦추었습니다. 아침부터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언짢습니다. 내 연배의 사람입니다. 상대를 염려하여 알려준 것인데 오히려 반감을 일으켰나 봅니다. 잠시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몰라서 그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아마도 마음이 급해서였을 겁니다. 차에서 내릴 때 뒤편에 서 있는데 어느새 나를 앞질러 걸음을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와 내가 잠시 한두 마디 말을 주고받은 곳은 건물 입구의 출입문 앞입니다. 손으로 여닫는 문이 아니라 사람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힙니다. 일정 시간이 정해져 있나 봅니다. 몇 사람이 차례로 들어가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 문을 지나갈 사람이 있어도 닫히게 되어있습니다. 하필이면 그와 내가 문을 통하려는 순간 열린 문이 스르르 닫힐 게 뭡니까. 급한 일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마음이 급할까요. 그는 문의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닫혀가는 문의 가장자리에 손을 대고 반대편으로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 조절이 약했나 봅니다. 문이 문틀을 향해 갑니다. 문을 잡은 손이 순간적으로 문틀에 끼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버튼을 누르며 말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요.”
당황했을까요?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습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괜한 참견을 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뒤를 따라 건물의 휴게실로 들어갔습니다. 구석에 있는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곁에 있는 신문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힐끗 뒤돌아보았습니다. 멋쩍은 생각이 들었을까요. 휴게실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더니만 슬며시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겨갑니다.
혈압을 쟀습니다. 평소보다 높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재보았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흥분했던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난 후 다시 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던 이유라 여겨집니다. 반말이 원인입니다. 나는 그에 대해서 모릅니다. 초면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원인 제공을 한 게 맞지만 그렇다고 억양 높은 반말을 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나는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반말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오빠는 갑자기 안 하던 존댓말을 해요.”
동생의 말입니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서서히 존댓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이야기 중에도 종종 사용합니다.
“야, 좀 껄끄럽다.”
어색하게 들렸나 봅니다.
“아, 습관적으로 튀어나왔나 봐.”
그때마다 말을 바꿉니다. 하지만 존댓말과 예사말이 섞이는 때가 많습니다. 남들과 이렇게 말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존댓말을 하게 되면 상대의 기분을 거슬리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의 방향을 묻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할 경우 존댓말을 사용하면 상대가 더 친절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젊은이나 아이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어느 경우에는 목적지까지 안내를 해주는 때가 있습니다. 고마운 생각에 가방에서 과자나 사탕을 꺼내어 살그머니 손에 쥐여줍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 밝은 미소를 머금고 내가 해야 할 인사에 앞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섭니다. 나는 그들의 미소에 전염이 되고 말았습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봅니다.
잠시 신문을 펼치다 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상대의 친절에 화를 낸 일이 없었나? 분명히 있었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오래전 일이 생각납니다. 내가 운동기구에 매달렸을 때입니다. 자세가 부자연스러웠는지 한 사람이 다가와 시범을 보이며 알려주려고 했지만 매정하게 물리치고 말았습니다. 멋쩍어하는 얼굴로 돌아서는 모습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나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염려하면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아침에 있었던 감정이 서서히 누그러들었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이지만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내 자그마한 친절은 계속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