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낯가림 20240807

by 지금은

어제는 이른 아침 아이가 울었습니다. 조금 늦은 새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찌 됐던 조용하던 아이가 울었다는데 방점을 둡니다. 기온이 높다 보니 아이도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지 모릅니다. 열흘 이상 계속되는 열대야가 밤을 물들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함께 산책합니다. 요즘 새벽 운동을 하는 나는 아이와 자주 마주칩니다. 방안보다는 밖의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나처럼 그 애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피부로 느끼는 결과이겠지만 아이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도 아기의 시절이 있었으니 알만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늦잠을 잘 만도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일찍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눈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낯이 익을 때도 되었는데 아이는 내게 곁을 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가까이 다가오기는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합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손을 흔듭니다. 어려서일까요, 말 대신 손으로 의사표시를 합니다. 유모차에서 내려 내 앞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뒤뚱뒤뚱 넘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용케도 균형을 잡습니다. 공을 차는 내 앞으로 다가오기에 관심이 있으려니 하고 멈췄습니다. 공을 발 가까이 밀었습니다. 스르르 굴러 아이의 신코에 닿았습니다.


‘으앙’


큰 물체가 발끝에 닿자 놀랐는지 모릅니다. 미소를 머금었던 할머니가 재빨리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나와 좀 가까워지겠다고 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너무 큰 물체가 다가가 놀랐나 보네. 미안해요.”


안겨 가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동안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걸립니다. 새벽부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게 여운으로 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른척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으로 들어오자, 탁자 위에 종이공이 보입니다. 며칠 전부터 만든 것입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을 보면서 종이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종이 접기에 미치다시피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손을 끊었습니다.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손이 심심합니다. 벽장에 모아둔 색종이를 꺼내 접어봅니다. 서툴기는 했어도 며칠이 지나자, 손의 감각을 찾았습니다. 헌 잡지를 뜯어 접어봅니다.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공이 됩니다. 전에 익혔던 것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만들기를 이어갑니다.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종이공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주하고 나서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늘도 빠뜨렸네.’


그제야 작은 실망감을 느낍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인사를 공손히 하는 아이를 보게 됩니다. 이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밝아집니다.


‘여기.’


하며 손을 내밀고 싶지만 늘 빈손입니다. 어제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작은 아이를 만났습니다. 인사를 받았지만 역시 빈손입니다. 이럴 때면 종이로 만든 공이나 꽃, 나비, 딱정벌레, 그밖에 것을 하나둘 손에 쥐어주면……. 늘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고 가끔 있는 일이니 무작정 손에 들고 다니기도 번잡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를 시청하는 동안 슬금슬금 접은 것이 어느새 한 상자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접은 것들을 넣으려고 보니 넘치게 됐습니다. 아내의 지청구가 있어도 또 하나의 상자를 마련해야 할까 봅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공과 함께 종이공을 두 개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어제 불쑥 내민 축구공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내게 다가올까 하는 마음입니다. 시간을 보니 일찍 잠에서 깨었나 봅니다. 평일에 비해 조금 이른 시간입니다. 놀이터 귀퉁이에서 공을 차면서 두리번거립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한참을 찼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그만하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저쪽 건물의 모서리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게 분명합니다. 나는 재빨리 아이를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돌다리를 건너오자, 아이의 손을 향해 종이공을 내밀었습니다. 흔들던 손을 가슴에 붙입니다. 다시 공을 내밀자, 머리를 흔들며 외면합니다.


‘낯가림하는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공을 손에 쥔 채 주춤거리자, 아이의 할머니가 받아넘깁니다. 나를 한 번 쳐다본 아이가 다시 외면합니다. 할머니가 아이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합니다.


“할아버지가 예쁘다고 주는 거야.”


내가 두어 발짝 떨어지자, 아이는 그제야 공을 받아서 들었습니다.


“안녕!”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고 뒷걸음치다 돌아섰습니다.


‘내일은 눈 맞춤이 나아지겠지. 때가 지나면 낯가림이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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