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피점(避點) 20240813
선풍기가 돌아갑니다. 눈을 떴지만, 날개는 어지러움에 취해있습니다. 취침하면서 낮게 조절한 선풍기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얌전합니다. 눈을 뜨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아내가 선풍기의 버튼을 누릅니다. 센 바람이 눈썹을 건드립니다.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향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습관이 돼버린 새벽의 발걸음, 손에는 공이 들려있습니다. 몇 년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습니다. 새벽공기가 멍한 마음을 일깨웁니다. 실낱같은 변화라도 어떻습니까. 아기 바람만도 못하다는 느낌이지만 어렴풋이 흐름을 실감합니다. 열 발자국쯤 거리에서 사람이 지나갑니다. 발걸음이 빠릅니다. 느린 걸음도 있습니다. 개의 목줄을 쥔 사람이 지나갑니다. 하나, 둘, 셋……. 몇 마리의 개는 힘들어 보입니다. 뒤뚱뒤뚱 걸음걸이가 말이 아닙니다. 다이어트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날씨에 사람만 불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개라고 해서 다름이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땅에 열기로 가득하니 키 낮은 개들이 더 힘들겠다는 느낌입니다. 주인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입니다.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선풍기의 스위치를 껐습니다. 내가 밖에 있는 동안이라도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밤새워 날갯짓했으니, 열불이 나지 않았을까. 공을 앞에 두고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공을 찬다고 말하지만,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찬다. 몬다, 건드린다. 쫓아간다. 멈춰 세운다.’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어느새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잽싸게 선풍기를 향해 다가와 버튼을 눌렀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속도를 높입니다. 윗도리를 벗었습니다. 선풍기 앞에 가슴을 내밀었습니다. 머리도 숙입니다. 등목 하는 것만은 못해도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아내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입니다.
“샤워해야지요.”
“선풍기를 틀지 말일이지.”
말꼬리를 남기며 화장실로 향합니다.
아침을 먹자, 아내의 눈치가 보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의 상황입니다.
‘웬만큼 더워야지.’
늘 군말 없이 식사를 챙겨주는 아내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퇴직하고 나서부터 느끼는 감정입니다. 직장에 다닌다는 유세로 상차림의 고마움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백수가 되고 나서부터 옆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들어옵니다. 식구가 적기는 해도 하루 상차림의 횟수는 일정하게 마련입니다. 세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먹고 돌아서면 또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가끔은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무더위가 목에 달라붙습니다. 땀이 온몸에서 배어납니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심하다고 합니다. 나 역시 느끼는 마음이 별다르지 않습니다. 열대야의 지속 일수가 어느 해보다 길다는 기상 관측자들의 말입니다. 가벼운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섭니다. 도서관으로 갈까, 복지관으로 갈까, 학습관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복지관으로 정했습니다.
“여보 같이 가면 안 될까?”
아내가 등을 떠밀며 손사래를 칩니다.
복지관에서 점심을 함께 해결하면 좋겠다는 내 의견에 아내는 늘 당신이나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더위를 피해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 부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아내의 수고를 덜고 싶습니다. 이 더운 날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불 앞에 시간은 곤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학창 시절 나 하나만을 위해 또는 집안 식구들을 위해 불 앞에 섰던 시기가 있습니다. 자랑할 건 못 되고 집안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농어촌이나 일선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현실 앞에 느끼는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호강에 겨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세월이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느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더위에다 피서라고요? 나는 이즈음이면 더위를 피할 목적보다는 식사 해결을 위해 집을 나섭니다.
‘여보, 이 더위에 잠시라도 불 앞에 서지 말고 밖에서 식사 해결을 할 수 없을까?’
“당신이나 잘 챙겨요, 나는 뭐 아무거나 좋아하니까.”
나도 이제는 아무거나 좋아하지만 함께 있으면 아내는 신경을 쓰니까 탈이 아니겠습니까. 대충 먹자고 하지만 이제는 귀한 손님이 아닌데도 마음에 걸리는 가봅니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