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전철 안에서 20241103
'급하다.'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내릴까 말까 고민이 됩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이 생겼습니다. 이까짓 거야 참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견디기로 했습니다. 네 정거장만 지나치면 될 듯싶습니다. 주위의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무심한 척했습니다. 하지만 뱃속이 부글거립니다. 좋지 않은 신호에 잠시 엉덩이를 조였습니다.
개찰구를 빠져나가자마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화장실이 급해."
느린 아내의 발걸음을 뒤로하고 앞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종종걸음을 했습니다. 갈 때 급하고 올 때 느긋하다더니 맞는 말입니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여유 만만합니다. 기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휘파람이라도 불 것만 같은 심정입니다.
모임에 가면 친구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늘 하는 말이 떠오릅니다. 옆의 친구가 덧붙였습니다.
"잠을 잘 자야지."
그 순간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중에도 잘 싸는 말이 나오면 더 긍정의 모습을 보입니다. 먹는 것 못지않게 잘 싸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위의 일로 별별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장거리 출퇴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왕복 다섯 시간의 거리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뱃속에 이상 신호가 오는 순간부터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뭘 그래요. 역에 차가 정차하면 곧 내려서 화장실로 가면 되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 역과 역 사이는 이삼 분이 소요됩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내려서 화장실로 향한다면 늦어도 오 분 정도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5년 8월 15일 개통되었습니다. 지금의 선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전철의 내부모습은 달랐습니다. 내부의 모습을 보면 에어컨 대신 천정에 선풍기를 달았습니다. 전동차의 겉모습이 비슷해도 성능은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역사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서서히 변화를 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개찰구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화장실입니다. 지하철이 개통되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수년간 역사의 화장실은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일부의 사람들 외에는 지하철 역사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역에 종사하거나 관련되는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배탈이 났을 경우 지하철을 벗어날 때까지 급한 용변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웬만하면 참고 목적지의 역까지 가지만 미칠 정도로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서울역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종종걸음을 했습니다. 너무 심각할 때는 다음 역에서 내려 후미진 곳에 실례를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바지에 실례를 할망정 그 짓은 할 수 없기에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창경궁 연못가를 돌면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되지 않나 봅니다.
“급하면 아무 역이나 내려서 가까운 빌딩이나 상가의 화장실로 가면 되지.”
아내의 말처럼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낯선 곳에서 겨우 발견했다 해도 문이 잠겨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지금처럼 공공화장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요즘 상태는 어떨까요. 한 마디로 좋습니다. 늘 배탈에 시달리던 내가 이십여 년 전부터 서서히 배앓이에서 벗어났습니다. 직장 동료가 알려준 민간요법이 적중했나 봅니다. 단장할 수는 없지만 위장에 좋다는 채소를 꾸준히 섭취한 결과라고 믿습니다. 물론 평소에 먹는 음식도 조심했습니다. 음식을 급하게 먹는 습관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폭식을 버리고 늘 같은 양을 먹으려고 신경 씁니다. 배탈로 잠시 진땀이 나는 듯했지만 젊은 날의 지하철 속에서 안달복달했던 때와는 천양지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아니 아침에 먹은 게 평소와 별다름이 없는데 배탈이 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건강관리를 잘한다고는 하지만 그날이 그날일 수는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지 않은 감기가 찾아오거나 몸살이 나는 것처럼 다른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만큼이나 하나둘 몸에 이상이 생기고 횟수도 늘어납니다. 며칠 전에는 자고 일어났더니만 온몸이 쑤시고 저렸습니다. 전날 평소보다 많이 걸은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배탈 역시 무슨 까닭이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몇 가지 소원 중에 하나는 배탈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람으로만 되겠습니까. 무조건 조심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