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입동에 떨어지다 20241107

by 지금은

‘반짝’


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손바닥만 한 새빨간 물체입니다. 노을이 물드는 보도블록 위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빛이 선명했습니다. 궁금증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오라, 낙엽이었군.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눈치를 보지 않고 집어 들었습니다. 막 떨어진 잎일까? 새빨갛게 물든 잎은 아직도 싱싱합니다.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상처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굵은 잎맥이 잎의 끝을 따라 여러 갈래로 퍼져있습니다. 잎을 든 다른 손바닥과 비교해 봅니다. 어느새 단풍과 손바닥이 노을 안에 있습니다.. 내 손은 노랗게 물들었고 잎은 더욱 빨갛게 반짝입니다. 머리 위의 은행잎 하나가 내 손을 지나쳐 내립니다. 재빨리 잡으려 했지만 내 손동작 느린가, 은행잎의 속도가 빠른가, 아니 은행잎이 손에 부딪치기 싫었는지 모릅니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어린 바람이 장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잎을 손에 들었습니다. 막 떨어진 잎은 싱싱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샛노란 잎을 손바닥에 올렸습니다. 눈이 두 손을 오고 갑니다.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요?


‘무엇이 다르지’


살아온 곳, 색깔, 잎맥, 크기, 모양, 부피, 발견한 순간…….


‘무엇이 같지’


식물의 잎, 노을 속, 손바닥 위,


위를 올려 보았습니다.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 빨강 잎의 고향은……. 그러고 보니 궁금합니다. 길의 담장을 이리저리 훑어봅니다. 모두가 작은 잎뿐입니다. 혹시 저 담장너머일까? 확인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담장은 눈을 가리고도 남습니다. 담장의 끝을 따라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은행잎은 놓아둔 채 빨강잎을 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신기한 물건이라도 대하는 양, 가는 내내 눈에서 떼지 못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어야겠습니다. 혹시라도 상처가 날까 해서 역에 이르자 가방을 열고 큰 책갈피에 정성껏 끼웠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가방을 열자 아내가 물었습니다.


“왜 그래요?”


“가을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단풍잎을 꺼내 창문에 붙이는 순간 바닥을 향해 ‘스르르’ 미끄럼을 탔습니다. 제가 낙엽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예쁘게 사진 찍어주려고 했는데.’


낙엽의 뒷면에 물 칠을 하고 다시 붙였습니다. 휴대폰을 들었습니다. 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단추를 눌렀습니다. 뜻밖이 풍경이 들어왔습니다. 어느새 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등을 뒤로하고 잎을 찍다 보니 내 그림자가 단풍을 감쌌습니다. 밖의 크고 작은 불빛이 암흑에 뒤엉켜 어지럽습니다. 방향을 바꾸며 몇 차례 찍었지만 원하는 모습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낮에 찍어야겠습니다.


가을을 집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뭇가지 하나 꺾어올 걸 그랬나, 지난해처럼 가녀린 들꽃 한 줄기 잘라올 걸 그랬나, 보름이나 눈에 넣고 지냈는데.


새벽잠에 깨어 거실로 나와 보니 단풍잎은 창가에 붙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의 내 마음을 알아차렸을까요. 밤새 벽에 홀로 붙어있기가 지루하지 않았을까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기울였을까요. 별이 보이지 않아도 잠시 별별 생각을 했습니다.


서둘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젯밤처럼 방향을 바꾸며 스마트 폰에 여러 장 담았습니다. 하지만 찍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바깥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온통 시야를 가리고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낮은 산이 가물거립니다. 저 산에서 가을을 불러오기가 어색합니다. 하늘에서 가을을 불러올까요. 오늘따라 바깥은 잿빛입니다,


‘먼 곳에서 데려온 손님’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겨울을 알리는 입동이군요.


떠나가는 가을을 오래 붙잡고 싶습니다. 단풍잎을 들었습니다. 뒷면에 물 칠했습니다. 다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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