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어느 해의 명절 20230216
명절입니다. 지금쯤은 가지각색의 신발들이 현관을 꽉 채웠을 겁니다. 현관은 이리저리 흩어진 아이들의 신발을 비롯하여 어른들의 신발을 다 품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일손을 도우면서 틈틈이 신발 정리를 할 것입니다. 군인들이 대오를 맞추듯 짝을 맞추어 가지런히 늘어놓고 나머지는 현관 밖 계단에 줄을 세웁니다. 세우겠지요.
어머니는 신발의 숫자만큼 손을 잡으며 친척을 맞이했습니다. 어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세상에나, 벌써 이렇게 큰 게야.”
조카와 손자들의 손을 잡으며 서로의 덕담을 나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충 하고 끼리끼리 모여 강아지들처럼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시작합니다. 부엌의 솥에서는 무엇인가 끓고 고소한 냄새가 연기처럼 다가옵니다. 사촌 동생들이나 조카들을 놀려주어야 하는데……. 나는 짓궂은 형이고 삼촌입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빼놓아야 장난은 멈춥니다.
“할머니, 삼촌이 나를 화나게 했어요.”
“아휴, 착한 우리 손자를……. 혼내줘야지.”
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옆방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지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이 친근한 풍경은 그 후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명절날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길 위에 있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날 근무가 뭡니까. 어른들을 뵙고 차례도 지내야 한다고 했지만, 들려온 답은 그렇습니다.
“댁만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 같은 처지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괜스레 서운했습니다. 도시락을 하나 달랑 들고 열차의 맨 앞에 올랐습니다. 나는 기관차 승무원입니다. 승객과 화물의 안전한 수송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합니다. 추석 전날 저녁 시간 화물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느새 밤이 깃들었지만, 밤 같지 않은 밤이 시작됐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두 승무원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침묵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늘 한 조가 되어 활동하다 보니 별로 나눌 말이 없습니다. 어느새 육 개월, 미주알고주알 하는 사이라 가정에 숟가락이 몇 개나 되는지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침묵하는 가운데 열차는 달립니다. 나의 뒤숭숭한 마음과는 달리 증기기관차는 달리는 내내 힘이 넘칩니다. 숨이 찬 듯 식식거리면서도 때때로 날카로운 경적을 울립니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에이 재수 없게 명절날 근무조가 될 게 뭐람.”
“이 사람아,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해야겠지. 나도 있잖나.”
경력 많은 선배의 말입니다. 선배도 선배 나름입니다. 그는 경력 30년의 선임 기관사입니다. 명절날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여러 번이라고 했습니다. 집안에 장손이라도 봐주는 일이 없다며 은근히 나를 다독입니다. 좋은 일하는 셈 치라고 말했습니다.
달은 기차와 나란히 달립니다. 밤이 시간을 더해갈수록 그림자는 점차 선명해집니다. 철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옵니다. 낮은 산과 들,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들, 색안경처럼 우리를 맞이하는 터널의 어둠, 터널 밖의 외딴집…….
철길을 가로지르는 건널목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땡땡땡…….’ 딱 한 사람 건널목을 지키는 간수의 손이 차단기를 내린 채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깃발이 흔들립니다. 그림자가 따라서 움직입니다. 일순간 그를 지나쳤습니다.
달은 지루하지도 않은지 계속 나를 따라옵니다. 계곡을 지나고, 다리를 지나고 들을 지나고 동네도 지났습니다. 가끔 얼굴을 감추기는 해도 끈질깁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달과 열차가 나란히 달리는 동안 무엇인가를 향해 개 짖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렸는데 어느새 닭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두 번째입니다. 한 번은 한밤중 또 한 번은 새벽입니다.
눈이 내립니다.
“눈이 내리는 날의 열차 여행은 낭만입니다.”
승객의 입장이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경우는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긴장합니다. 추운 날씨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단지 내 앞 몇십 센티미터의 화구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내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증기기관차는 이글거리는 몸통을 끌어안은 채 부지런히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