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비 오는 날에 아침 20230312
일요일의 아침은 평소보다 게으름을 피웁니다. 이제는 출근할 일이 없지만 옛 기억이라도 되살아나는 듯 기상 시간이 미루어지곤 합니다. 평소 6시 기상이 오늘은 7시 반이 됐습니다.
‘아직 6시 정도겠지.’
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켰습니다. 시계를 보니 예상 시간이 훨씬 빗나갔습니다. 창가로 다가가니 안개가 자욱이 끼었습니다. 앞의 빌딩이 잿빛에 가렸습니다. 내가 거실에서 부산을 떨자, 아내가 나왔습니다. 아들도 뒤이어 제 방에서 나왔습니다. 주방을 힐끗 보고는 물을 한 컵 마시고 다시 들어갑니다.
어젯밤 뉴스를 보니 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만 웬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개 낀 날은 날씨가 맑다는 말이 있는데 일기예보가 틀린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을 먹고 평소처럼 가벼운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공을 챙기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저녁 늦게.”
식사 후 차를 한 잔 마시고 밖을 내다보니 횡단보도에 우산을 쓴 사람이 보입니다.
‘어느새 안개는 사라지고 비가 시작된 거야?’
운동은 그만두어야겠습니다.
하늘은 날 오락가락하게 만듭니다. 다시 밖을 내다보니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합니다. 운동을 나가야 할까 말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습니다. 책을 들어 몇 페이지를 넘겼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괜히 창밖이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며칠 전에 겉옷을 홈쇼핑에서 구입했는데 아들은 물론 우리 부부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크기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가 나지 않습니다. 반품을 결정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백화점이나 복합상가 매장에 가서 맘에 드는 걸로 골라 봐요.’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만 잊고 말았습니다. 다시 비가 내립니다. 오늘 비는 오락가락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 오는 날에는 무엇을 할까?
미리 정해놓은 것이 없으니, 소파에 앉아 TV를 켰습니다. 만만한 게 뭐라고 눈이 먼저 가게 마련입니다. 잠시 화면을 보다가 아내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그머니 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아내가 사과 반쪽을 들고 와 나에게 내밉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채 일어섰습니다.
“왜요?”
“바람이나 쐬려고요.”
우산을 들었습니다. 큰 우산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손바닥을 내밀었습니다. 하늘이 뿌옇습니다. 감촉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펼친 우산을 다시 접었습니다. 무게가 느껴집니다. 막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은 상황입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큰 우산이 좋기만 했습니다. 작은 우산에 비해 울림이 묵직합니다. 작은 우산이 바이올린이라면 큰 우산은 첼로라고 말해야겠습니다. 북에도 견주어 봅니다. 작은 우산은 작은북 큰 우산은 큰북입니다. 두드림이 우렁찹니다. 좀 더 뻥튀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 고유의 악기입니다. 작은 우산은 꽹과리입니다. 큰 우산은 징입니다. 그보다는 정확한 표현이 있습니다. 북과 장구입니다. 작은 우산은 장구이고 큰 우산은 북입니다.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이것저것 들먹였지만, 장구와 북으로 귀결을 짓겠습니다.
‘통통통, 퉁퉁퉁’
때로는 빗줄기의 리듬이 어느 가락보다, 어느 리듬보다 더 멋질 때가 있습니다.
‘Rhythm Of The RIN'의 가사를 읊조립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봐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바보였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 실컷 울어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우울한 느낌이 듭니다. 곡의 리듬은 경쾌한데 가사는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지금은 봄입니다. 모든 새싹이 기지개를 켭니다. 밝은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이럴 때는 작은 우산도 필요하겠지요. 어쩌겠습니까. 추녀 끝에서 큰 우산의 반쪽만 내밀어 보는 겁니다.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