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봄맞이 개학 20230316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통통 불었습니다.
‘개학’
학생들만 설레는 게 아닙니다.
오늘 노인회관 평생학습 개강하는 날입니다. 무려 3년 만입니다. 코로나19에서 헤어나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나들이 정장을 입었습니다. 그동안 몇 년이나 장 속에서 자는 옷들을 깨웠습니다. 이것저것 몸에 걸쳐보았습니다. 입고 벗기를 몇 차례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고 그것도 모자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이 옷 어울려요?”
“아니, 뭐…….”
속옷이 맞지 않는다기에 밝은 셔츠로 갈아입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칙칙해 보이던 내 얼굴이 밝아 보입니다. ‘씩’ 미소를 지어봅니다. 처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맞아 잠시 잊었습니다. 웃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요 며칠 새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회관으로 들어섰습니다.
“봄이 여기에 모인 게야?”
길에서 보던 칙칙한 모습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화사한 모습입니다. 서늘한 느낌의 바람이 얼굴을 스치기는 해도 봄기운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두꺼운 외투는 간데 온데 없습니다..
‘사진 에세이.’
내가 1학기에 수강할 과목입니다. 참새들이 방앗간에 모인 것처럼 교실이 소란스럽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올씨.”
느지막이 강의실 문을 들어서 앞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둘레둘레 보았지만, 나를 부른 사람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 들은 거야 하는 생각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떠들썩하던 강의실이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해졌습니다. 강사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강의실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옷차림이 봄이지만 얼굴도 목소리도 봄입니다. 70·80대의 수강생에 비해 50 초반의 강사가 앳된 얼굴은 화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볼우물이 목소리만큼이나 애교스럽습니다.
강사가 강의 계획을 말하자, 수강생들의 걱정이 쏟아집니다.
“처음 와봤는데요.”
“처음 시작하는 건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리세요. 시를 떠올려 글을 적으시면 됩니다.”
“시가 처음이라서…….”
“동시를 찾아 읽으시고, 책이 없으면 옆 건물에 있는 도서관에서 빌려보셔도 됩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처음 가는 길처럼 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사가 어린아이 달래듯 환한 미소와 함께 다정한 말로 분위기를 이끌어갔습니다.
“반장을 뽑아야 합니다. 회관 측의 요청입니다. 하고 싶으신 분”
강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반장을 하면 다음 수강 때 혜택이 있답니다. 혜택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강사가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올씨요.”
강사가 주위를 둘러봅니다. 모른 척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러자 추천한 사람이 나를 가리킵니다. 생각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하기 싫으니 어쩌겠습니까. 다른 반에서 반장으로 뽑혔으니 다음 학기에나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비교적 적은 사람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빠르고 활동적입니다. 잠깐이지만 강사의 말을 따라 동료들의 밴드 가입을 잘 도왔습니다. 잠시 사진을 밴드에 올리는 연습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배운 것을 실습하셔야 합니다. 쓰고 싶은 내용에 맞추어 사진을 한 장씩 올려 보세요.”
집에 오자 어느새 사진과 글들이 줄줄이 밴드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내 사진만 빠진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저녁에 나갈까, 아니면 밤에 나가 야경을 찍어볼까. 아니면 내일? 이번 주 과제이니 천천히 해도 될 성싶습니다.
여름방학 숙제가 생각납니다.
‘에고, 미루다 게으른 학생이 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