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안 보면 멀어진다더니만 20230418
‘딱 맞는 말인가 봅니다.’
사람만 그런 줄로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그림책 만들기를 했습니다. 집 앞의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프로그램이라 부담 없이 참석했습니다. 그림책은 나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틈틈이 함께 보아왔고 그 후에는 도서관에 들르면 가끔 어린이 방에 가서 책들을 훑어보았습니다. 성인들의 책 못지않게 재미가 있습니다. 예전에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것과 별다름이 없다 생각됩니다. 글씨가 없거나 있어도 몇 문장 되지 않습니다. 무심코 나도 그림책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소원이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꼭 간절하다기보다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두다 보니 어느새 서너 권의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두 권의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한 권만 손에 넣었습니다. 욕심이 과하기 때문일까요. 끝나고 나니 마음이 앞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해에는 꼭 해보겠다고 완성하지 못한 줄거리를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이어서 또 다른 구상을 하고 다른 공책에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장을 메웠습니다.
‘올해만큼은 꼭 두 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바쁘다는 핑계로 공책들을 뒷전으로 밀어놓았습니다.
오늘입니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확인하던 중 그림책 만들기 과정이 눈에 뜨였습니다. 5월부터 시작입니다. 재빨리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더미 북이 완성된 거나 다름없으니, 참석만 하면 됩니다. 책장에서 계절을 넘기며 잠자고 있는 자료를 꺼냈습니다. 장을 펼치며 살펴봅니다.
‘이게 뭐야?’
그림이 일정 부분 내용과 맞지 않습니다. 쪽 수도 어긋납니다. 뭔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조금만 손보면 끝이라는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내에게 보여주며 중간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료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사진 에세이’ 수강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차근차근 점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텅 빈 도서관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작은 종이들을 김발을 널 듯 차례대로 늘어놓았습니다. 낙서하듯 그려놓은 그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다소 엉성해도 완성된 그림은 내 머릿속에 꽉 차 있습니다. 그림 구상을 정리하며 몇 차례의 착오 끝에 순서와 장면을 보완했습니다. 몇 자리를 새로운 종이가 차지했습니다.
멀어졌던 것은 어디 그림책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써놓은 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성하지 못한 글들을 컴퓨터의 보관함에 담아 놓았습니다. 버리기 아깝다는 이유입니다. 며칠 지나 생각이 떠오면 내용을 이어갈 생각이었는데 그만 잊고 만 것들이 여러 편 있습니다. 태어나지 못한 글들은 가끔 우량아로 빛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유식을 잘 먹이고 영양제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에 기억된 이름 중에는 몇 년간이나 통화 없이 지나갔습니다. 마음을 함께 나누며 가까이 지낼 때는 다정다감했는데 이제는 잊혀 가는 이름이 늘어납니다.
‘잘 지내는 거지?’
머릿속을 온통 이야기로 채웠습니다. 전화번호를 누르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왠지 낯선 느낌이 듭니다.
휴대전화에 이름과 번호는 쌓여가는 데 정작 다정하게 부를 이름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느새 긴 세월이 되었습니다.
‘죽었으면 어쩌지, 병석에 누워있다고 하면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마음이 머뭇거리고 손가락도 머뭇거립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는 전화를 거는 일도 받는 일도 부쩍 줄었습니다. 나의 움직임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몸이 무겁습니다. 자고 나면 온몸이 쑤셔옵니다. 기억력도 무뎌집니다. 이름을 부르려다 말고 뭐지 하고 더듬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림책을 생각하듯 아는 사람들의 얼굴도 마음도 헤아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