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할머니의 밥상보. 20230426
나는 도시의 호젓한 골목길을 거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로변의 모습들은 왠지 정감이 가지 않습니다.
시골은 신이 만들고 도시는 악마가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도시를 악마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원도심의 골목은 신과 악마가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젊었을 때 살던 도시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고 불편함은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고향 못지않은 향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모처럼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갑자기 골목길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다, 겨울이다.’
핑계일지는 몰라도 한동안 바깥출입이 많지 않다 보니 골목길에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했습니다.
원도심 주택들은 아직도 땅의 기운 아래 있습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자리 잡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습니다. 골목길에는 대단한 기술자들이 삽니다. 그 때문인지 주민들도 흙에 기대 사는 것에 익숙합니다. 작은 틈만 보여도 씨를 뿌리고 식물을 키웁니다. 대문 위 공간에도 지붕 옥상에도.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어떤 자리에도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 나갑니다.
봄이 되니 골목길은 찬바람을 몰아내고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상추와 고추부터 각양각색의 꽃나무들. 고추나 파가 많다면 골목에 할머니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녀들의 놀라운 작물 재배는 신을 능가합니다. 골목에 정취를 더하는 것은 이런 식물들 때문입니다. 그것이 식용이든 꽃이든 초록의 다정함은 나를 골목으로 이끕니다. 서울의 남산 기슭에서 색다른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어, 저거 그거 같은데. 그 뭐라 하지? 밥상을 덮던……. 너무 오랜만에 만나 그 말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맞다. 밥상보! 유년의 윗목, 차린 밥상을 단정히 감싸주던 밥상보. 개다리소반에 맞게 천 가운데 손잡이가 있던 알록달록한 어머니의 조각보.’ 사는 집은 모시나 비단으로 수를 놓고 급할 땐 신문지로 대신하기도 했던 그 밥상보. 화분을 덮은 건 그 밥상보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화분 텃밭을 덮었으니 '텃밭 보'나 '화분 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어떻게 화분을 통째로 이렇게 덮을 생각을 다 했지. 안을 들여다보니 상추, 쑥갓, 당귀, 방풍 온갖 채소가 자라고 있습니다. 쌈장과 밥공기만 놓으면 그대로 자연 한 상차림입니다. 벌레로부터 고양이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밥상을 지켜주는 골목길 밥상보. 그 누구일지 골목길 기술자의 특별한 보살핌과 다정함에 웃음이 납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경로당이 있습니다. 이곳의 계단에는 큼직하고 네모난 화분 몇 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보는 다양한 화분들과는 비교가 됩니다.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퇴색된 양복과 한복이라면 맞을 것 같습니다. 네 개의 화분에는 꽃 대신 고추와 파, 상추, 부추, 방풍나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젊은 부부가 말했습니다.
‘아파트에 어울리게 꽃이나 심지, 청승맞게 채소를 가꿀 게 뭐람. 몇 푼 되지 않겠구먼.’
값을 따져야만 하겠습니까. 이 속에는 할머니의 향수와 건강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고개를 드는 것처럼 할머니들의 손길도 분주해집니다. 겨우내 묵혀두었던 흙을 쏟아내고 흙을 갈았습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아직도 잠을 자고 있을 땅을 뒤엎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비닐을 덮었습니다. 속이 들여다보이던 흙은 정오가 되자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기온이 오르자, 습기가 차고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중입니다. 몇 분의 할머니가 당번을 정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시간에 맞추어 도서관에 갈 때면 어김없이 한 분이 화분을 어루만지며 주위를 맴돕니다.
지난해 가을입니다. 경로당 마당의 화분 가까이에 잘 익은 고추가 햇볕에 일광욕하고 있습니다. 나는 군인들이 연병장에서 사열하듯 줄을 맞춘 고추들이 좋아 보여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참 곱기도 하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할머니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삶과 내 지난날의 삶이 함께 어울려지는 순간입니다.
늦게 퇴근하는 나를 위해 아내가 차려놓은 아침 밥상. 유년의 윗목을 따뜻하게 덮어주던 밥상보. 아랫목에 묻어 놓은 밥공기와 한 이불속에서 꿈을 꾸던 소년은 따뜻했던 그 온기를 골목길에서 다시 만납니다.
‘자식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