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22. 앵두가 익었네. 20230620

by 지금은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유행가의 가사 말입니다.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부를 때 가사에 집중한 일이 있었습니다. 왜 동네 처녀가 우물가에서 바람이 났을까. 그냥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물레방앗간에서의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앵두나무 우물가에서는 청춘남녀가 어울리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를 철이 들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물가는 동네의 여자들이 물을 길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곳이니 동네의 정보교환이 비교적 잘 이루어집니다. 이웃집의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도 알고 있으니, 노래의 가사처럼 이뿐이, 금순이의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물동이 호밋자루 내던지고 서울에 있는 누군가를 찾아 단봇짐을 싸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서울을 동경하여 농촌을 떠난 것입니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10여 년 동안 앵두가 익을 때면 올해까지도 맛을 보았습니다. 새나 다람쥐가 앵두를 따 먹듯 여러 날 동안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앵두나무 우물가는 아닙니다. 인가에서 동떨어지고 한적한 공원의 구석입니다. 학교 울타리와도 간격을 벌린 오목한 구석으로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입니다. 앵두를 처음 맛보는 날은 마음이 설렙니다. 어릴 적 맛을 잊지 못한 까닭입니다. 동네 처녀가 바람난다는 우리 동네 우물가에는 정작 앵두나무가 없습니다. 대신 맨 아랫집 친구네 집 안에 있는 우물가에는 앵두나무가 해마다 꽃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주머니에서 앵두 몇 알을 건네주었습니다. ‘새콤 달달’ 이루 말할 수 없는 맛입니다. 올해도 앵두 맛을 보기 위해 나만의 장소로 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벌써 새콤 달달한 맛이 입안에 감돕니다. 앵두를 입에 넣었습니다. 아직은 새콤 달달한 맛이 아닙니다. 색깔이 더 짙어져야겠습니다. 잘 익은 것으로 몇 알 따서 손바닥에 올렸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했습니다.

“맛이 어때요.”

답변보다 먼저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비밀, 해마다 장소를 말해도 잊은 게야.”

“어릴 때 먹던 맛이네.”

아내는 아직도 앵두의 맛을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결혼하던 다음 해 처가를 찾아갔습니다. 이맘때입니다. 우물이 없는 내 키 정도 높이의 울타리에 자리 잡은 앵두나무 열매가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흥부네 아이들이 한 이불속에 모여 있는 느낌입니다. 잎에 가려진 가지 사이사이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내는 보물이라도 감췄다 꺼내 보이는 것처럼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습니다.

“뭔지 알아? 앵두라는 거야. 입에 넣어봐.”

알갱이가 아들의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와 아내는 처음 보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듯 기색을 살폈습니다.

“뭐가 이래!”

씨를 뱉고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잠시 나는 낯선 아이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도 기대와는 다르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하기야 요즘의 새로운 과일이나 열매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체리, 블루베리를 비롯한 외래종이 우리의 입맛을 길들이고, 우리 고유의 과일이나 열매도 품종 개량을 하여 예전의 맛을 숨기며 강도를 높여갑니다.

나는 앵두의 맛을 잊지 못하지만 단지 하나의 추억일 뿐입니다. 맛으로만 친다면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기대와 추억이 맛을 배가할 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추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이미 버찌의 맛을 보았습니다. 앵두의 맛도 보았습니다. 무엇이 다음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매실과 살구나무 열매가 햇볕에 화장을 시작했습니다. 점차 노란 색조 화장이 짙어질 것입니다. 익을 대로 익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몇 개 골라 맛볼 예정입니다. 개살구, 개복숭아, 개똥참외, 개라는 말이 들어간 열매는 푸대접의 대상입니다. 크기도 크기이지만 우선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새콤한 맛의 참살구입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일까요. 도시에 살면서도 나름대로 종종 시골 맛을 느끼곤 합니다. 어느새 한낮의 더위가 느껴집니다.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더위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죽음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더위 속에서도 오늘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유난히 멋집니다. 파란 하늘이 가을을 연상시킵니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담았습니다. 귀룽나무의 부르기 쉬운 이름, 구름 나무가 떠올랐습니다. 단풍이 짙어지면 늘어진 귀룽나무 가지에 매달린 열매가 검붉게 익어갈 것입니다. 내 눈도 내 손도 줄줄이 줄에 매달릴 겁니다.

아들은 지난해와 같이 내가 내미는 열매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뭐, 별것도 아니구먼.”

아들은 추억의 맛을 모릅니다.

내일은 한창 무르익은 앵두를 따 먹으러 가야 합니다. 다람쥐와 새에게 추억을 양보하라고 말할까요. 대신 팥배나무 열매는 모두 가져가라고 할까요. 고개를 저으면 어쩌지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동안 사이가 좋았으니까.

‘내년에는 모두 양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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