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26. 우산과 나 20230626

by 지금은

‘빗방울 한두 방울씩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에 물기를 느낀 아이가 하늘을 올려봅니다. 빗방울 하나가 콧등에 부딪혔습니다. 또 다른 굵은 빗방울이 눈썹을 건드렸습니다. 아이는 모르는 사이에 눈을 찔끔 감았습니다.

‘후드득후드득’

바람이 빗방울을 몰고 달려왔습니다.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을 펼쳤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우산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아이의 머리칼이 날립니다. 바람을 맞은 눈도 가늘어지며 파르르 떨립니다. 순간 우산이 장난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몸을 가누며 몇 걸음 걸었을 때 바람에 속삭였습니다.

“바로 지금이야.”

기다렸다는 듯 바람은 손에서 재빨리 우산을 빼앗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우산을 공중으로 날렸습니다. 우산이 오던 길을 되돌아 저만큼 먼발치에 내려앉았습니다. 화단입니다. 우산 꼭지에 콕 찍힌 땅은 아프지 않을까요.

아이는 재빨리 우산을 따라 달렸습니다. 마침내 우산을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핍니다.

‘좀, 신경을 써야 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숨을 고르고는 다시 우산을 펼쳤습니다.

이번에는 바람이 우산에 말했습니다.

“하늘을 날아 본 재미가 어떠니? 한 번 더 놀려 줄까.”

아이는 되돌아간 길을 다시 걸어갑니다. 징검다리만 건너면 됩니다. 몇 발짝만 뛰면 곧 집입니다.

징검다리에 이르렀습니다. 한 발짝 건너뛰려 할 즈음 바람이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준비할 사이도 없이 바람은 우산을 아이의 손에서 빼앗았습니다.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며 흔들었습니다.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우산은 나는 것 같았지만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이리 둥글 저리 둥글, 바람에 밀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에이, 이게 뭐람. 집에 다 와 가는데.”

아이는 징검다리를 건너뛰고는 재빨리 달렸습니다. 하지만 앞선 바람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에이, 옷만 흠뻑 젖었네.”

이마에 흐르는 빗줄기를 훔쳐냈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은 셔츠도 털어보았습니다. 옷이 온통 물에 젖었습니다. 피식 웃음을 지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괜찮은 거야.”

아이는 제 몸이 젖은 생각은 잊고 우산 걱정을 했습니다. 다행히 우산 꼭지의 상처를 빼고는 괜찮습니다. 우산을 다시 썼습니다. 쓰기는 했지만, 이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비를 맞아도 그만, 맞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다시 징검다리에 이르렀습니다. 비를 세차게 몰아갔던 첫 바람과는 달리 뒤에 바람이 혼잣말했습니다.

“한 번 더 놀려주면 재미있겠지?”

다리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 느슨하게 잡고 있던 우산을 홀딱 젖혔습니다.

“안 돼.”

“내 몸이 뒤집어지면 회복할 수 없어.”

준비 안 된 우산은 온몸에 힘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되돌아 우산을 향했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우산도 아이의 움직이는 발자국만큼 달아났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너무 빨리 달아나면 재미없는 것 알지, 술래잡기 놀이처럼 말이야.’

아이는 우산을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폈습니다. 팃검불을 털어내고 우산살을 살폈습니다. 손잡이가 바닥에 긁혔습니다.

‘오늘은 약속이 없어서 다행이야.’

비가 다시 우산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 더 놀려주자.”

“안 돼 안 돼, 내 몸이 망가질지도 몰라.”

징검다리에 이르렀습니다. 물이 넘실거립니다. 빗방울들은 슬며시 물러갔습니다. 아이는 우산을 내렸습니다. 우산을 펼친 채 물속으로 던졌습니다. 몇 발짝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기우뚱거립니다. 마침내 물살에 떠밀렸습니다. 징검다리 사이에 멈췄습니다. 몇 차례의 배가 되었습니다. 못다 물러가지 못한 빗방울을 태웠습니다. 못다 물러가지 않은 바람도 태웠습니다.

아이의 돌아오는 길은 멀었습니다. 대신 어느 여름날보다 몸과 마음은 시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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