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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56. 긴장 20230814

by 지금은

아침에 문자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버지께 전화하지 마세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번 사촌 동생의 딸 결혼식에 갔다가 안부를 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 동생에게 봉투를 내밀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한사코 사양하기에 손을 거두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끄려다가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먼저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는 동생이기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시 확인하기를 잘했습니다. 여섯째 삼촌의 아들이 아닙니다. 일곱째 삼촌의 아들인 의사입니다. 장마가 계속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에 삼촌을 찾아뵐 생각을 했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여섯째 삼촌이 아니라 셋째 삼촌에 관한 일입니다. 그동안 양로원에 계셨는데 한 달 전쯤 요양원으로 장소를 옮겼답니다. 내가 헛걸음이라도 할까 봐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에는 구십 세가 넘은 분이 네 명입니다. 삼촌 세 분 숙모 한 분, 공교롭게도 모두 요양원에 계십니다.

나는 네 분 중에 셋째 삼촌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자식이 없는 홀몸입니다. 나는 잠자리에 들 때 깨어나서 기도합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백세인 삼촌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랐는데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흔하지 않은가 봅니다. 생로병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문자를 받고 나니 마음이 심란합니다. 곧바로 답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일곱째 삼촌과는 앞의 일에 대해 대략 이야기를 나눴지만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던 대로 컴퓨터에서 지도를 검색했습니다. 병원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삼촌이 조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곧 찾아뵈어야 합니다.

‘내일은 광복절, 모레쯤 가서 뵈어야 할까.’

망설이는 사이 동생이 전화했습니다. 전화번호 확인을 잘못해서 문자 전송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에 시간을 냈다고 합니다.

“미안해.”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맡았다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께는 전화하지 마세요.”

재차 부탁입니다. 셋째 삼촌이 곧 퇴원할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동안 동생인 아버지가 형님을 수시로 돌봤습니다. 몇 달 전에는 부인과 사별했습니다. 남달리 걱정이 많은 분입니다. 나는 삼촌의 성격을 알기에 수긍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몇 분도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외삼촌, 숙모, 이종형 님…….

장손인 형님은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서 생활한 지 여러 해입니다. 삼촌이 양로원에 있는 동안 의사 아버지인 막냇동생이 보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아들인 의사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유년기 시절 누구보다 삼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생활 능력이 없다 보니 집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보호자이며 친구였습니다. 집안 식구 모두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가면 남는 건 동생 둘과 모두 넷입니다.

농촌의 생활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 일입니다.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분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마움을 알기에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지금껏 마음속에 고마움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찾아갔을 때는 동생의 말처럼 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창문 너머로 얼굴을 보아야 했습니다. 인터폰으로 말을 주고받으라고 했지만, 청각의 손실로 의사소통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손짓만 하며 잠시 얼굴만 보다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 달 전에 양로원에 전화했습니다. 안부를 물으며 대면으로 면회를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0세 건강에 맞게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더위가 한풀 숙어지면 가야지 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노인은 하루가 다르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밖에서의 음식 대접마저도 멀어지나 봅니다. 장마의 끝은 덥습니다. 말복이 지났으니, 더위가 누그러들기를 기대했는데 마음 같지 않습니다.

‘생로병사’

태어남은 마음속에서 제쳐두었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다. 정해진 이치건만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짓누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턱 막힙니다. 샤워 후의 기분처럼 모든 게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를 해봅니다. 삼촌이 기운을 차리셔서 양로원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의사 동생의 말로는 현재 희망 사항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믿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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