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복(伏) 달임 20230815
몸에 좋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관심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몸에 좋다는 것은 의식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음식입니다. 특히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온갖 동식물을 가지지 않습니다. 문득 떠올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뱀, 개구리, 녹용, 해삼, 장어, 인삼……
복이 가까워지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옻닭 해 먹으러 갈까?”
나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옻을 탄다고 했더니만 약을 미리 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옻 순을 먹고 고생했습니다. 한 달 이상 부작용에 시달렸습니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논의 결과 옻닭, 개고기, 삼계탕, 추어탕, 장어요리 등을 말했지만 다수결에 의해 오리탕을 먹었습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속담 생각이 나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처음 먹는 음식임에도 거부감 없이 잘 먹었습니다. 예전에는 오리가 닭에 비해 대접받지 못했나 봅니다. 지금은 역전된 상태입니다. 닭에 비해 오리의 숫자가 적어서일까요,
옆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옛날 어느 집에서 닭을 키우는데 옆집에 사는 이웃이 그 닭을 탐냈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닭을 잡아먹었습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주인에게 이웃은 자기 집 오리를 잡아먹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이 속담은 이처럼 옳지 못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엉뚱한 속셈으로 시치미를 떼며 은근슬쩍 위기를 넘기려는 태도를 빗댄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닭과 우리 중 어느 것이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왁자지껄하자 음식점 주인이 다가와 눈치를 봅니다.
“천천히 드세요. 말을 섞어야 고기가 더 쫄깃해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보양식이 다른가 봅니다.
해산물을 익혀 먹는 서양인들은 생굴만은 좋아합니다. 특히 정력을 유지하는 데 좋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과 카사노바가 굴을 즐겨 먹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피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용했다는군요.
태국은 ‘똠얌꿍’, 중국은 ‘불도장’, 일본은 장어요리 ‘우나기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날을 전후해서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삼복더위라고 합니다. 문헌을 찾아보니 복날에는 소고기나 개고기 등을 먹으며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거나 바닷가에서 모래찜질하며 더위를 물리쳤습니다. 이를 ‘복달임, 복놀이’라고 했습니다.
복달임은 ‘복’에 무언가를 달여 먹는 탕을 뜻하는 ‘달임’이 붙은 말입니다. 전통적 복달임으로 흔히 개나 닭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달걀 낳아주는 닭과 집 지켜주는 개를 잡아먹으려면 과거에는 꽤 큰 재산상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천렵 국을 먹었습니다. 천렵이란 냇가나 강가에서 헤엄치고 고기도 잡으며 하루를 즐기는 놀입니다. 이때 먹는 음식이 천렵 국입니다.
요즘은 어탕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쉽게 말해 민물 생선 매운탕입니다. 피라미, 꺽지, 모래무지, 미꾸라지, 붕어 등 개울에 망을 쳐서 잡은 민물고기를 솥에 넣고 물을 부어 푹 삶아 체에 밭쳐 생선 뼈를 발라냅니다.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생강, 들깻가루 따위 양념을 풀고 간장으로 간합니다. 한소끔 끓으면 호박, 양파, 깻잎, 미나리 등 채소를 더합니다. 여기에 국수를 말면 어탕국수, 수제비를 떠 넣으면 어탕수제비, 밥을 말아서 끓이면 어죽이 됩니다. 요즘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추어탕 전문 음식점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우리 집은 해마다 복날보다 앞서 삼월에 보양식을 먹었습니다. 우리 집은 해마다 닭을 몇 마리 키웠습니다. 할머니는 식구 중에 가장 건강이 허약한 사람을 위해 약 병아리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작은 닭이 약효가 있답니다. 푹 고아서 반 마리는 주인공에게 주고 나머지는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살이 몇 점이나 될까요, 더 먹고 싶지만, 멀건 국물로 대신했습니다. 내 생각이지만 궁핍하던 시절이니 약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지금이야 복날에 보양식을 굳이 먹어야 할까 합니다. 먹거리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기에 좋아졌으니 영양 때문에 건강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먹는 게 지나쳐 성인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복날에는 불어난 몸을 위해 한두 끼 굶거나 절식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