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72. 슈퍼 문 20230901

by 지금은

가을의 문턱을 막 넘어섰습니다. 가슴을 콱 막히게 하던 더위도 한풀 꺾였습니다.

저녁에 도서관에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 슈퍼 문(super moon) 뜬다는 거 알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자연의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밖에 나가면 생각 외로 시간이 길어집니다. 작은 변화에도 발길을 멈추게 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소나무의 새순이 타조의 목처럼 길게 자라날 때면 신기한 마음에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박주가리 열매가 익었을 때도 그렇습니다.

‘너는 조롱박과 먼 친척이라도 되는 거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내의 말도 있었고 SNS를 통해 알고 있는 슈퍼문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파란 공간 희미한 구름 띠가 나무에 걸렸습니다. 너무 파란 때문일까요. 검은 나무가 하늘에 찍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거진 공원의 나무들이 하늘을 잔뜩 가렸습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연신 하늘을 둘러봅니다. 나무들 사이를 벗어났습니다. 하늘을 올려봅니다. 큰 건물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거지 하는 생각에 확 트인 잔디밭에 이르자 다시 발을 멈췄습니다. 푸른 하늘이 더 푸르러 보입니다.

‘뭐야, 이 맑은 날에 달이 보이지 않는다니.’

분명 오늘은 슈퍼 문이 뜬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내가 달과 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습니다. 오늘이 보름인 게 맞기는 맞는 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SNS에서 괜한 헛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발길을 옮기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가끔 헛소문이 있기는 경우도 있는데…….

공원을 벗어나 건널목을 건넜습니다.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의 손에 눈이 머물다 머리로 향했습니다. 그의 머리가 하늘을 향해 사십오도 방향으로 젖혀져 있습니다. 내 머리도 똑같이 젖혀졌습니다.

‘슈퍼 문.’

가로등이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지만 바로 위로 달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어린아이의 환한 얼굴처럼 또렷한 모습입니다. 요즈음 보아온 달빛보다 몇 배나 밝아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했던 가장 크고 밝은 달에 비하면 뭐, 별거 아니라 하는 마음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던 달과, 중·고등학교 시절 밤늦게 공부하다 밖으로 나와 보던 달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늦은 밤 어머니의 마중으로 돌산을 넘을 때의 마주하던 달, 섬 생활을 할 때 큰 창문으로 잠자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던 달과는 완연히 다릅니다. 아기의 눈동자처럼 또랑또랑 하기는 해도 그만큼의 동공입니다. 커 보이지 않는 대신 또렷하다는 말로 대신해야겠습니다.

잠시 모습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몇 장 찍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들여다보았지만, 그 옛날의 그 달이 아닙니다. 크기도 밝기도 추억 속의 순서에 끼워 넣을 수가 없습니다. 슈퍼 문은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장 가까웠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달빛만으로도 온 동네를 대낮처럼 밝혔는데 지금의 도시는 이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인공의 빛으로 인해 도시가 밝혀지고 달은 그저 빛의 상징물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올해는 일기가 불순하여 보고 싶은 달을 두 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장마, 폭우, 태풍, 등 불청객 때문입니다. 내 기억력도 있습니다. 양력에 의존하다 보니 음력을 잊는 일이 흔합니다.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더라, 달력을 들춰야 합니다. 내 집도 문제가 있습니다. 북동향이고 보니 창문을 통해 달이 뜨고 지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기대와는 달리 실망입니다. 사전 교감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달과 별이 된 오누이’의 동화책이라도 읽어야 할까요. ‘나무꾼과 선녀’는 어떨까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느낌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쓰듯 동화 한 편을 써보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교감이 부족한 듯합니다. 자주 보아야, 오래 보아야 정이 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달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보, 나 나갔다 와요.”

“아니 늦게 들어오고 또 나가요?”

“다시 달을 반겨야 할까 봐요.”

“에구, 못 말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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