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백로 20230909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계절은 어김없이 달립니다. 열대야가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새벽에 팔다리를 스치는 바람기가 느껴집니다. 드디어 열대야가 물러났나 봅니다. 오늘이 백로라는군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백로라, 새의 이름도 아니고 오늘이 무슨 백로야.’
어릴 때의 생각입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24절기를 손꼽는 삼촌의 설명입니다.
“입춘이 뭐게.”
“봄이 되는 날.”
“동지는 뭐 게.”
“팥죽 먹는 날.”
“그게 아니고 밤이 제일 긴 날을 말해.”
절기를 자주 말하는 삼촌 곁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계절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백로(白露)는 새가 아닙니다. 절기의 하나입니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입니다. 백로란 흰 이슬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가을이 완연해져서 밤의 기온이 떨어지고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서 풀잎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음과 양의 교차, 즉 낮과 밤의 기온 차로 인해 밤사이에 흰 이슬이 맺히고 서리가 내리는 절기입니다. 하늘이 맑고 곡식과 과일이 익어갑니다. 추수 준비를 하고 벌초를 시작합니다.
나는 백로와 풀의 관계를 알지 못했지만, 이때쯤이면 오전에 길을 걷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손을 돕기 위해 밭이나 논에 나가면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신발을 미끄럽게 합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나의 발걸음을 방해합니다.
어떡하겠습니까. 이슬을 조금이라도 덜 적셔보려는 마음에 막대기를 들었습니다. 별 소용은 없지만 막대기로 풀을 좌우로 헤칩니다. 아무래도 긴 밭둑이나 논둑을 지나다 보면 남은 이슬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젖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옷자락을 쥐어짜지 않았을 뿐입니다. 발바닥이 미끈거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정 고무신은 내 발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합니다. 가끔 미끄러지며 벗겨지기도 합니다. 마른 지푸라기를 몇 가닥 접어 신발에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윗옷도 젖었습니다. 엎드려 일을 하다 보니 일어난 일입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옷이 마르겠지요.
이슬이 내릴 때면 나는 패랭이꽃과 메꽃을 좋아합니다. 가을꽃이 봄꽃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은은함이야 인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루 중에도 이슬이 떠나지 않았을 때의 모습입니다. 햇살이 막 풀잎에 닿을 때 패랭이꽃이나 메꽃의 아름다움이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선뜻 생각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패랭이꽃, 꽃 주위에 이슬을 맘껏 매달고 있는 메꽃,
‘반짝’
‘반짝’
‘또 반짝’
발을 옮길 때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영롱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새벽녘과는 달리 아직도 더위가 느껴집니다. 어느새 겨드랑이에 땀이 찹니다. 빨라지는 걸음을 막았습니다. 천천히, 더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무릎이 밖으로 구부러졌습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나보다는 젊어 보이는데 벌써,
‘허리를 펴요, 무릎을 안으로 집어넣는 연습을 해요. 이왕이면 고개를 꼿꼿이 세웠으면 좋겠구먼.’
아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해주고 싶지만 생각뿐입니다.
나는 말 대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두 팔을 새의 날개처럼 펼치고 숙어지려는 어깨를 폈습니다. 나이 먹는 티를 내려는지 몸의 균형이 무너지려 합니다. 그렇게 그이 곁을 지나쳤습니다.
나는 학교 옆 늪지대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울타리 가장자리에 얼굴을 빠끔 내밀고 있는 몇 줄기의 패랭이를 알고 있습니다. 야생의 패랭이입니다. 가녀린 꽃, 오월의 카네이션을 연상합니다. 꽃송이가 작을 뿐입니다. 나는 올망졸망한 작은 꽃송이가 좋습니다. 가을꽃의 모습입니다. 언덕배기에는 어느새 들국화가 껑충한 줄기를 앞세우고 나를 반깁니다.
부들에 둘러싸인 작은 바위에서 백로(白鷺)가 긴 다리를 세운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백로(白鷺)의 발에는 백로(白露)가 머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