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87. 콩 볶아 먹는 날 20230910

by 지금은

며칠 전 콩 튀긴 것을 샀습니다. 몇 달 전에는 쌀 튀긴 것을 한 자루 사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뻥튀기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의 추억입니다. 조용하던 동네가 뻥튀기 장수가 오는 날이면 그가 떠날 때까지 시끄러웠습니다. 곡식을 튀기는 소리는 포탄을 터뜨리는 소리만큼 컸고, 이 집 저 집 곡식을 가지고 모여들어 동네 마당은 시골 장터처럼 시끄러웠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와 부녀자입니다.

‘뻥이오’

소리와 함께 쌀, 보리쌀, 콩, 누룽지 등이 바구니나 자루에 한가득 담깁니다. 한 되의 곡식이 한 자루의 부피로 늘어납니다.

“에구 쌀농사가 이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겨울철 눈이 내려 쌓인 날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굶주리던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가을철 수확기이고 보니 곡식을 튀길 여유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집안의 주전부리가 됩니다. 과자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돈이 귀하기 때문에 ‘뻥튀기’ 값으로 곡식이나 고철 등 물건으로 대신하기가 대부분입니다.

‘콩 튀기’를 주문하기 전입니다. 아내에게 콩 튀긴 것이 먹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어릴 때의 추억도 담았습니다. 콩을 볶아 먹는 것보다 더 부드럽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이빨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딱딱해서 씹을 수 있겠느냐는 말을 미리 막을 셈이었습니다.

‘콩 볶자 쥐 복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입니다. 하루는 삼촌이 오늘은 콩 볶아 먹는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음력 이월 초하루입니다. 고모와 삼촌과 나 셋이 함께 한 줌의 검은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으니 세시풍속은 대부분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날은 곡식이 잘 여물라는 의미에서 콩을 볶는다고 하는데, 콩이 톡톡 튀는 소리가 곡식 여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또 겨우내 부족한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하려는, 조상님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콩 볶자, 쥐 볶자’에서 쥐 볶자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없앴으면 하는 소망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가을이 오니 콩서리 생각도 납니다. 콩이 익어갈 때면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다 모닥불에 콩대를 꺾어 놓았습니다. 익은 콩을 먹으며 까만 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문지르고 깔깔대며 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놈들, 또 콩서리 한 게야.”

어른의 호통에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얼굴에 고스란히 증거를 남겼으니 더 이상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곡식이란 소중한 것이니 다음에는 한 톨도 남기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같은 또래의 사람은 같은 추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습관에는 글쓰기 반이 있습니다.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이야기를 하던 중 ‘뻥튀기’, 튀밥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각자의 표현을 담으니 한 바구니가 되고도 넘칩니다. 처음 뻥튀기 소리에 놀라 도망간 일,

귀를 막고 땅바닥에 엎드린 일, 뻥튀기를 먹게 해달라고 떼를 쓴 일…….

콩을 볶다가 손을 덴 이야기, 솥을 깨뜨린 이야기, 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먼 등굣길에 먹으며 다닌 일……

글쓰기 반이 마지막 수업을 끝내는 날입니다.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간식거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궁리 끝에 뻥튀기를 가져갔습니다(쌀 튀밥). 단연 인기입니다. 손으로 집어 먹는 재미가 있지만 각자의 손이 들락거리게 되니, 종이컵을 인원수만큼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퍼가세요.”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손이 분주히 큰 주머니 속을 들락거립니다. 헤어질 때가 되었지만 아직도 주머니 속은 여유가 있습니다.

“더 드실 분, 뻥튀기는 매일 오는 게 아니에요.”

고향 마을을 찾았던 뻥튀기 장수의 흉내를 냈습니다. 뒤쪽에 앉았던 수강생이 말했습니다.

“이것을 한 입 넣으면 다 없어질 때까지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럼 한 시간 연장하지요. 뭐.”

“좋기는 한데 밥맛이 없어요. 곧 점심시간인데…….”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옛날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고, 지금은 너무 먹어 성인병에 걸려 죽는 일이 있으니, 군살을 빼는 셈 치고 모두 점심은 생략하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강사가 말했습니다. 빨리 끝내고 싶은 심정을 이해합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겠지요. 입맛 없으면 밥맛으로 드세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는데, 수업 끝났다고 그만두지 마세요. 쓰기 싫어도 자꾸만 쓰셔야 해요.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처럼 써야 남지 않겠어요. 다음 수강 때 꼭 뵙기로 해요.”

집으로 돌아오자 곧 콩 튀기가 입으로 들어갑니다. 돌아오는 이월 초하루에는 정말 콩을 볶아볼까요. 손자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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