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88. 아내의 말 20230910

by 지금은

“버려야 할 때가 지난 거 아닌가요. 새 수건이 한 아름인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아들이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 제 어머니를 향했습니다. 수건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유행에 민감한 아이고 보니 사용할 만큼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수건을 보니 5·6년은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날짜가 찍혀있습니다. 학습관 개관 기념품입니다. 목욕 타월도 얇아질 만큼 얇아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바꿀 것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도 많습니다. 유행이 지난 물건이나 옷이라도 언젠가는 돌고 도는 게 유행이 아니냐며 장 한쪽이나 구석에 쌓아 놓았습니다. 대부분은 빛을 보는 날이 찾아오지 못하는데 몇몇 옷은 때를 만났습니다.

예를 들면 힙합 바지입니다. 한동안 거리를 쓸고 다닐 만큼 통이 넓고 길이가 긴 바지가 유행했는데 점차 엉덩이와 종아리 등의 굴곡이 드러나는 바지가 거리를 누볐습니다.

‘어쩌지요.’

그 많은 사람이 입던 옷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제는 다시 통이 넓은 바지가 유행을 탔습니다. 바지뿐이겠습니까. 상의도 이에 맞춰 변화를 가져옵니다.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못했나 봅니다.

나는 여름 바지가 필요해서 마련했는데 유행이 변할 때 몸에 끼는 바지를 사게 되었습니다. 은연중에 젊은이들의 유행을 따라 해보고 싶었습니다. 넓은 바지를 사고 싶었지만 찾기 어려운 이유도 있습니다. 작년 한 해 입고 장 속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고는 해도 통이 좁아 불편합니다.

“거 봐요, 살 때 내가 뭐라고 했지요.”

나이를 먹으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아이들 옷을 입으니, 태가 날 수가 있겠느냐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다시 유행이 찾아올 때까지 쌓아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끔가다가 아내와 옷이나 물건 문제로 의견 충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서로 긍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주방 벽에 있는 문을 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사용하던 물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휴대용 물병을 하나 꺼내야 합니다.

“아! 웬 물병이 그들먹해. 너무 많아. 안 쓰는 것은 남을 주든 버리든 해야겠어.”

“요즘은 눈이 높아 남 주기도 어려워요. 정리를 한 번 해야지.”

쓰는 것만 쓰다 보니 새것이 많습니다. 죽기 전에 다 써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맘에 드는 새것을 하나 꺼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옷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결혼할 때 산 옷이 아직도 장의 옷걸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점퍼도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모양의 옷이 유행을 찾아오기를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입니다. 옷을 갈아입으려다 옛 생각에 가끔 꺼내어 걸쳐봅니다. 거울 앞에 섰습니다. 고개를 젓습니다.

‘이건 아니야.’

사연이 있는 옷이지만 버려야 한다면서도 이제껏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늘어나더니 장을 꼭 채웠습니다. 옷과 물병뿐이겠습니까. 온갖 잡동사니가 방, 거실, 주방, 베란다, 벽장, 다용도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쌓여 사람 하나 드나들기 힘든 집들을, 주마다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물건에 집착하는 강박관념을 지닌 사람이라고 합니다. 본인이야 불편함을 모르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은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사자를 설득하고 기관에 민원을 넣기도 했습니다. 이를 돕는 여러 사람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주인을 설득하여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지.”

긍정을 하면서도 한 번 마음먹고 집안의 쓰지 않는 물건을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말 나온 김에 말대로 하는 거야.”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버리겠다 하면 ‘그래요.’하고 답하고 당신이 버리겠다고 하면 ‘좋아요.’ 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이방 전방을 둘러봅니다. 그동안 쓰지 않던 새것을 꺼내놓아야 합니다.

‘늘그막에 신혼 사림이라도 하려는 거야.’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