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89. 아내의 말 20230910

by 지금은

“버려야 할 때가 지난 거 아닌가요. 새 수건이 한 아름인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아들이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 제 어머니를 향했습니다. 수건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유행에 민감한 아이고 보니 사용할 만큼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수건을 보니 5·6년은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날짜가 찍혀있습니다. 학습관 개관 기념품입니다. 목욕 수건도 얇아질 만큼 얇아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바꿀 것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도 많습니다. 유행이 지난 물건이나 옷이라도 언젠가는 돌고 도는 게 유행이 아니냐며 장 한쪽이나 구석에 쌓아 놓았습니다.


하루는 주방 벽에 있는 문을 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사용하던 물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휴대용 물병을 하나 꺼내야 합니다.


“아! 웬 물병이 그들먹해. 너무 많아. 안 쓰는 것은 남을 주든 버리든 해야겠어.”


“요즘은 눈이 높아 남 주기도 어려워요. 정리를 한 번 해야지.”


쓰는 것만 쓰다 보니 새것이 많습니다. 죽기 전에 다 써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맘에 드는 새것을 하나 꺼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버려야 할 것 많습니다. 우선 베란다의 빈 화분입니다. 켜켜이 쌓아 놓았습니다. 화초를 잘 키운다고 노력은 하지만 관리 소홀로 해마다 빈 화분이 늘어납니다. 집안이 허전하다는 생각에 맘에 드는 것을 한두 개 사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봄을 생각하니 버리기가 아깝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는 남을 줄 수도 없습니다. 전에 살던 집은 햇볕이 잘 들어 키우는 꽃마다 무성해서 남을 주기에 좋았습니다. 빈 화분이 흔해지고 보면 빈 화분이 처치 곤란입니다. 예전에는 쓰레기장 옆에 놓아두면 누군가 필요해서 가져가곤 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버릴 때 폐기물 딱지를 붙여야 합니다. 새봄에는 남에게 좋은 일 한다는 셈 치고 화초를 사다가 심어 밖으로 내놓을까 생각도 합니다.


‘키워야지, 왜 내놓아요.’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집 베란다는 생각하는 것처럼 넓지 않습니다. 빨래걸이 장소를 제외하면 큰 화분 서너 개를 놓기도 비좁습니다.


집안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버렸다가 다음에 쓸 기회가 생기면 조금만 참았어야지 하는 후회입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은 경우를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내가 남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는 지갑과 허리띠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모아보니 열 개도 넘습니다.


‘허리띠를 언제 다 사용하지.’


많다는 생각에 친척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낡아빠진 허리띠 대신 새것을 사용하려고 했더니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끼다 보면 찌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펜을 선물로 받은 때도 있습니다. 겉보기에 모양이 좋습니다. 열어보니 속도 알차 보입니다. 잘 간직했다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써보라고 주었는데 주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잉크가 굳어 글씨가 써지지 않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지런히 사용할 걸 그랬다며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잉크가 나오지는 않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버리지 않고 책상 서랍 한구석에 모셔두었습니다. 이래저래 쌓인 물건이 많습니다. 만년필, 샤프펜슬, 붓…….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늘어나더니 장을 꼭 채웠습니다. 옷과 물병뿐이겠습니까. 온갖 잡동사니가 방, 거실, 주방, 베란다, 벽장, 다용도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쌓여 사람 하나 드나들기 힘든 집들을, 주마다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물건에 집착하는 강박관념을 지닌 사람이라고 합니다. 본인이야 불편함을 모르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은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사자를 설득하고 기관에 민원을 넣기도 했습니다. 이를 돕는 여러 사람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주인을 설득하여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지.”


긍정을 하면서도 한 번 마음먹고 집안의 쓰지 않는 물건을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말 나온 김에 말대로 하는 거야.”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버리겠다 하면 ‘그래요.’하고 답하고 당신이 버리겠다고 하면 ‘좋아요.’ 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이방 전방을 둘러봅니다. 그동안 쓰지 않던 새것을 꺼내놓아야 합니다.


‘늘그막에 신혼 사림이라도 하려는 거야.’


어느새 아내가 새 수건을 여러 개 가지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말대로 되어갈 모양입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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