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92. 하루 한 문장 20230912

by 지금은

평생학습관입니다. 오늘 한 문장이라는 프로그램이 개설되었습니다.

‘금지된 것만 하고 싶고, 강요된 것만 하기 싫고’

은희경의 「새의 선물」 중간에 나오는 소제목입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생각을 매일 한 문장씩 동아리 모임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책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좋습니다. 사회적으로 꺼리는 내용이 아니라면 관계없습니다. 비방의 글이나 혐오의 문장은 배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첫날, 좀 수준 높아 보이는 문장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읽은 책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게 좋겠다고 책을 들췄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 많은 활자 속에 희미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을 찾아내기란 수월치 않습니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첫머리에 쓰인 문장입니다.

젊은 시절의 반항심이 나를 불러왔을까요. 사춘기의 허황한 행동과 마음입니다. 괜히 잘난 척하고 싶고 객기를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사춘기의 영화, 주인공을 흉내 내고 싶어서 교복의 앞 단추를 몇 개 풀고, 모자를 삐딱하게 썼습니다. 가방은 옆구리에 끼었습니다. 하지만 못할 짓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지만 나 혼자 신경이 쓰였습니다. 통통 불은 책가방이 무겁습니다. 가슴으로 스미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아무나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고쳤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니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중에는 금지된 것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연애질이고 싸움질이야.”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건달’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생 시절의 건달 흉내, 성인 사회에서의 건달입니다. 숫자가 많고 적음이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입니다.

“공부 좀 하지, 할 일이 없으면 영어 단어라도 하나 외고.”

흔히 듣던 말입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한정해서 하는 말이니 퍽 오래전의 일들입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뭐 달라진 게 있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을 차리는 사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성향은 제각기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니 어느 책을 읽었는지 어떤 내용의 문장을 좋아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서정적인 사람, 활발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은 책에 관심을 두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쓰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나 또한 이에 속합니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책 읽기, 운동, 여행, 음악 감상……. 나는 책 읽기와 걷기입니다. 읽기와 걷기는 모두가 사색의 시간이라도 내야 할까요. 나는 동화적 삶을 좋아합니다.

평생학습관에서 책 읽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나 봅니다. 지금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바로 전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보름 동안 정해진 분량만큼 각자 읽고 마음에 와닿은 문장을 짧게 소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길면 다섯 줄, 짧으면 세 줄 정도입니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열다섯 명의 수강생이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짬짬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모두 완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책을 읽고 내용을 음미하기도 하지만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기술하고 자기 생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살짝 귀띔을 해줄까요. 위에 기술된 짧은 문장은 지난번 수강생끼리 함께 읽은 책 속에 숨어있는 한 구절입니다. 마음이 좀 급했습니다. 오늘은 빨리 참여하고 다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자칫 잊을까 하는 노파심이었습니다.

읽는다는 것.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홍수의 물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책 읽기는 마음을 먹어야지만 의외로 마음과는 무관하게 읽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간판, 홍보물, 각종 물건의 설명서……. 이런 것들이 하찮아 보이지만 가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바람 부는데 거기서 떨고 있어야 하는 거야’

현수막이 넓은 바람벽에 꼭 붙어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힘내, 하늘이 보고 있잖아. 가만히 잊지 않을 거야.”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요, 사람이 책을 만든다고요. 그럼 읽어야 하지 않겠어요. 써야 하지 않겠어요.”

창밖을 봅니다. 구름이 어느새 그림을 그립니다. 글씨도 씁니다. 모두가 가을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