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93. 이제는 내 책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20230912

by 지금은

“그림책 완성, 찾아가세요.”

도서관에서 문자로 연락이 왔습니다. 강사의 말로는 9월 말이나 10월경에나 받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더위를 무릅쓰고 점심을 먹자마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늦더위입니다. 오늘도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겼습니다.

‘뭐야.’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솔방울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소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입니다. 별일도 다 있다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벚나무입니다. 웬 벚나무에 솔방울이, 더 가까이 발을 옮겼습니다. 솔방울이 벚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바람에 앞뒤로 일렁입니다.

누군가 모빌을 만들었나 봅니다.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솔방울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요. 매듭지은 솜씨로 보아 아이는 아니겠다고 짐작했습니다. 요리조리 살폈습니다.

‘소리 나지 않는 방울은, 깎을수록 커지는 것은, 먹을수록 많아지는 것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수수께끼 놀이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솔방울이 서로 부딪치면 소리가 날까. 살그머니 줄을 잡고 부딪쳐 보았습니다. 갑자기 그림책의 소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며 몇 장 찍었습니다.

나는 몇 년 사이에 네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시중에 내놓을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고 도서관이나 노인복지관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제목에 맞게 그리고 쓴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주었습니다. 딱 한 권입니다. 오로지 나만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책.’

여러 권이면 아는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 좋겠지만 영리 목적이 아니니 책 한 권으로도 만족합니다. 사비를 들이면 원하는 만큼 제작을 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돈도 돈이려니와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잠시 뒤로 미뤘습니다. 몇 년 동안 관심을 두다 보니 이제는 흐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말했습니다.

“처음보다 그림 솜씨가 많이 늘었어요.”

내가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없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노력을 하면 실력이 늘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남 앞에 이렇다 하고 내 솜씨를 뽐낼 수는 없지만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잘 그렸다 할 만합니다. 작년입니다. 노인회관에서 사진 에세이를 배웠는데 장난삼아 어릴 때의 내 모습을 그려 글과 함께 올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림책을 찾으러 왔습니다.”

“무슨 그림책을 말씀하시나요?”

사서는 내가 서가에 있는 그림책을 빌리는 줄로 알았나 봅니다.

“손주 보여주게요?”

생각지 않은 물음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안내 문자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앉아있는 책상 밑에서 책을 꺼내줍니다.

“어르신이 그리셨어요? 대단하시다.”

“예, 재주는 없지만…….”

옆에서 책을 펼쳐본 봉사자는 눈이 반짝 빛납니다. 도서관에 신문을 보러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하시냐며 깜짝 놀라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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