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98. 고향 친구와 점심을 20230916

by 지금은

“잘 안다고 하더니만 방향이 틀렸잖아.”

점심을 먹고 역으로 향하는 중 친구는 낯선 길이라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나는 이정표를 보고 맞는다고 하면서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며 신경이 쓰이는 발걸음입니다. 나와 만남을 이야기하며 점심을 먹을 음식점을 친구가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아는 사람들과 몇 번 갔었는데 음식이며 휴식 공간이 맘에 든다고 했습니다.

역에서 만났지만, 음식점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내내 미덥지 않은 발걸음입니다.

“맞나 모르겠네. 길눈이 어두워서 말이야. 내 약점이야.”

“세상에 다 잘하는 사람 있나, 이런저런 능력이 다르니 서로 어울려 사는 게지.”

친구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잘 찾았습니다. 늘 정확한 것을 앞세우는 사람이라 함께 만나는 친구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동창 모임에서 총무를 맡은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만 교대를 하고 싶다고 하지만 친구들이 영원한 총무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면 얼마나 더 하겠다고, 회장에서 강등돼서 그런 거야.”

“미친놈.”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늘 이마를 마주하고 지냈으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한식구나 다름없습니다. 조부모와 부모의 내력은 물론 서로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알고 있습니다.

음식 맛이 좋다고 하더니만 말 그대로입니다. 주식도 좋지만, 반찬이 맘에 들어 종업원에게 한 접시 더 부탁했습니다. 연근입니다. 씹는 느낌이 좋습니다. 친구의 얼굴이 밝습니다. 종업원이 더 필요한 것이 없느냐며 소문난 집이라고 자랑합니다. 두 사람의 말이 맞습니다.

점심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좌석이 꽉 찼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보입니다. 대기석의 나란히 놓인 의자마저 앉을자리가 없습니다. 서성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원수를 말하자 대기표를 주었습니다.

“저쪽 안으로 들어가시면 휴게실이 있습니다. 차례가 되면 벨이 울리니 오세요.”

안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입니다. 에어컨 바람에 시원하기는 하지만 통로라서 왕래하는 사람들과 자칫 부딪칠 염려가 있겠다 싶습니다. 잠시 커피를 뽑는 사이에 친구가 밖에서 손짓합니다. 또 다른 공간입니다. 역시나 복잡하기는 하지만 편안한 공간입니다. 찬 기운이 없는 게 하나의 흠이라면 흠입니다. 호떡만 한 크기의 뻥튀기를 몇 개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동안의 식성으로 보아 물리지 않는 게 뻥튀기입니다. 금방 없어졌습니다. 친구가 일어나 몇 개를 더 가져왔습니다.

친구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겠지.”

“수다를 떨 공간이 있어서 좋구먼, 떠들다 보면 금방이지.”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팔렸는지 모르겠지만 벨 소리가 다급하게 들립니다. 소리 자체가 서두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먹다 만 뻥튀기를 손에 든 채 종업원의 뒤를 따라 지정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실내가 넓다 보니 종업원이 좌석을 안내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찬이 식탁에 오르는 사이에 내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음식 계산을 해야겠으니 양보해.”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데.”

“지역 상품 구매 신용카드가 있잖아, 인천에 사니 할인 혜택이 있어.”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인천 카드라서 사용할 수 없답니다.

“여기 인천 아닙니까. 부개동인데.”

“아뇨, 부천 상동입니다.”

다른 카드로 계산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던 친구가 낌새가 이상했던지 물었습니다. 카드를 잘못 꺼냈다며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동이 갈렸으니,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부개역에서 만났으니 당연히 부개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곧 헤어지기가 싫은 눈치입니다. 휴게실에 앉자 못다 한 이야기를 쏟았습니다. 식사 전에 보이던 사람들은 대기자가 아닙니다. 식사를 마치고 환담을 나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작 나는 할 말을 몇 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듣는 사람이 나뿐이니 집중이 잘 되는 모양입니다.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말이 별로 없는 나는 상대가 입을 닫는 순간 멋쩍은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습니다.

역으로 돌아갈 때는 길눈이 어둡다는 말이 생각나 내가 앞장을 섰습니다.

“150 미터나 더 걸었잖아. 잘 안다고 해서 믿었더니만.”

그렇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나는 초행입니다.

“처음은 다 그럴 수 있는 거야.”

친구가 ‘씩’ 웃음을 보이며 배낭에서 봉지를 하나 내밉니다. 별거 아니라지만 나에게는 별거입니다. 고향이 들어있습니다. 애호박 두 개, 밤 두 주 먹입니다. 콕 찌르기도 하지만 수다만큼 배려도 할 줄 아는 친구입니다. 동창 모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뒷말을 남기며 차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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