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30. 화장 생각 20231008

by 지금은

제목을 생각하고 책상머리에 앉았습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그림 전시회에 가는 중입니다. 전철을 탔는데 한 여학생이 손거울을 보면서 화장의 열중입니다. 속눈썹을 붙이고 가위 비슷한 것으로 모양을 냅니다. 화장 주머니에서 립스틱을 꺼내 입술로 가져갑니다. 나는 안보는 척하며 힐끔힐끔 곁눈질했습니다. 만족한 듯 거울을 이리저리 비추더니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의 눈도 나의 눈과 일치했나 봅니다.

“민얼굴이 훨씬 예쁘구먼.”

“나도 금방 그렇게 생각했어요.”

“안 보는 줄 알았더니만 어느새 훔쳐본 거예요.”

“글 쓸거리를 찾다 보니…….”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집에 가면 화장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아내에게 암시를 해주었습니다.

전시회장에 도착했습니다. 인물화에 대한 액자들이 촘촘히 흰 벽을 메웠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의 작품입니다. 다양한 얼굴입니다. 다 둘러보고 난 느낌은 다양한 연령대라서 그런지 각각의 특색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초등학생들의 작품입니다. 때 묻지 않는 그대로 표현입니다. 다소 세밀하지 못한 면이 있지만 꾸밈없이 나타낸 그림에서 정감이 느껴집니다.

이곳에 전시된 그림들은 단색의 연필화도 있지만 거의 모두가 화장한 생태입니다. 색감을 넣었습니다. 전철 안에서 화장한 여학생을 떠올립니다. 짙은 화장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습니다. 그림 중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이 눈에 뜨입니다. 그림이고 보니 나름의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화풍이 모두 같을 수는 없고, 또 우열을 가리기에는 내 눈이 전문가의 안목 이르지 못합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리를 지나가다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나 현수막이라도 볼 때는 어김없이 찾아가 작품들을 둘러봅니다. 그림, 사진, 조각, 서예…….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감상하는 자체로 즐겁습니다.

인사동 화랑에 들렀을 때입니다. 어느 작가가 가족과 별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그림인데 작품의 숫자가 많습니다. 밤하늘이지만 사람들의 몸가짐이나 표정이 제각각이고 별의 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적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어렸을 때 살던 고향 마을과 집이 떠올랐습니다. 별이 뜨는 봄밤, 여름밤, 가을밤, 겨울밤, 모두가 계절에 따른 특색이 있습니다.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떠 있는 별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밤입니다. 별들이 마당에 한가득 모였습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별이 점차 거리를 좁혀갑니다. 별똥별이 가끔 달려가며 긴 꼬리를 보입니다. 가을의 별은 보름달을 앞세웁니다. 추석 무렵이면 달을 앞세우고 뒷전으로 물러서 있습니다. 강강술래 하는 우리들을 따라 무리를 지어 안보는 척 슬그머니 내려다봅니다. 겨울입니다. 눈 쌓인 길을 따라 늦게 마을 갔다 돌아오는 밤, 등 뒤를 따라오며 길을 밝혀줍니다. 한밤중 오줌을 누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냉기에 등골이 오싹합니다. 여우의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무서워하지 마.’

달이 환히 웃고 있습니다.

감상을 한 후 화가에게 다가갔습니다.

“동화 같아요.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엮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의 내용을 나에게 주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대신 유년 시절 고향 집 식구들과의 별구경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호박꽃이 활짝 핀 여름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을 피고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별구경을 하다가 심심하면 개똥벌레를 잡아 호박꽃에 넣었습니다. 장난 삼아 호롱불이 필요하다며 대신 호박꽃을 들고 책을 펼친 채 글씨를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습니다. 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다음 밤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을 하러 갔는지 모릅니다. 나도 일어서 동구 밖 개울로 향합니다. 세수도 하고 별들의 노란 화장술 못지않게 단장을 해야겠습니다. 흘러가는 물속에 머리를 푹 담갔습니다. ‘푸푸’ 머리를 드는 순간 숨어있던 별들이 흩어집니다.

‘어쩌지요.’

흉을 본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나를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플라스틱 말이로 앞머리를 말아 올렸군요. 자기 작품 앞에 서서 친구와 속삭입니다. 그림 속의 아이도 화장한 얼굴입니다. 마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만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켭니다. 별이 반짝이더니 우수수 떨어집니다. 화장을 지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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