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착각 20231011
수요일이면 집 앞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글씨를 배웁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재미있다고 합니다. 서예, 손 글씨입니다.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낯익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니 얼굴을 알고 있지만 길에서 만나면 서로 묵례만 하고 지나치는 사이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어쩌다 홀로 생각할 일이나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을 때는 한가한 틈을 타서 단지 내 무인 카페에 갑니다. 노트북을 열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씁니다. 주로 내 생활과 관련된 소소한 일상입니다. 산문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을까요. 하루는 책을 읽고 있는데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곁에 와서 앉았습니다. 소리 없이 입을 계속 움직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곁눈질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손바닥 크기의 메모지가 들려 있습니다. 자연스레 종이에 눈이 옮겨갔습니다. 영어 글씨가 지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이 있으니, 소리를 죽이고 입술만 움직입니다.
‘늦은 나이에 외국어에 열중하고 있다니.’
나는 아직도 외국어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영어가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니 그때의 실력보다 퇴보됐다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문장은 고사하고 낱말도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몇 번인가 실력을 키워보겠다고 여러 차례 시도한 일이 있지만 작심삼일이 되고 보니, 제자리걸음이라도 할지 했는데 다시 뒷걸음질하는 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발짝 앞으로 갔다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셈입니다.
그는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앉으나 서나, 걸음을 옮기나 늘 메모지를 손에 들었습니다. 하루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있는데 외국의 어린이 몇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잠시 재미있게 환담하다가 한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 먹으려고 카드를 꺼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지 잠시 머뭇거립니다. 다른 아이들이 합세했습니다.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지만,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그 사람이 일어나 그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건넵니다. 영어입니다. 그는 능숙하게 아이들에게 원하는 음료수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 후 자리에 앉자, 그들과 한동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능숙한 발음은 아니어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그런 그가 내 건너편 옆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결원이 있어서 온 거야.’
순간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스마트폰 사용 요령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능이 많다 보니 배울 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좋은 기능이 있지만 알지 못해서 방치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 전에 사진 편집을 간단하게 배운 때가 있는데 오래되다 보니 사용방법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새로운 추가 기능을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수강 신청을 했지만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나만 당첨이 되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안면이 있으니 다가가 인사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이 막 시작될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강사와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입니다. 알고 보니 결원이 되어 온 게 아니고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다음에 수강 신청을 하셔서 오시지요.”
복지관의 수강 규칙을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습니다. 같은 곳에 살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잠시잠깐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내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서평 쓰기 강의가 처음 시작되던 날 시간에 맞추어 갔습니다. 담당자가 출석을 확인하기에 이름을 댔습니다.
“명단에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무작정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등록 상황을 확인했는데 정말 이름이 없습니다. 분명 등록했는데 웬일입니까. 신청 과정에서 내 실수가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의 도중 교실이 어두워지고 영상이 돌아가자 슬며시 일어나 담당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없네요.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다음 기회에 참가하시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황당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부러 한 일은 아니지만 매일 보다시피 하는 사람이고 보니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니고 보면 늘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나이를 먹어갑니다. 기억력이 희미해지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메모로 메워가지만 놓치는 때가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는 속담처럼 늘 확인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