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귀한 대접 20231112
현관의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다가가려고 했더니 아내가 한 발짝 앞섰습니다. 손을 내젓습니다. 아내의 손님인가 봅니다. 문이 열리고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웃집 여자입니다. 방문하겠다고 미리 전화를 한 게 틀림없습니다.
“모과가 탐스러워 몇 개 가져왔어요.”
집에 있는 나무에서 딴 것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에도 집이 있나 봅니다. 전에 아내가 한 말을 우연히 들은 기억이 납니다. 함께 서예를 배우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이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텃밭이 있는 집에서 개도 키운다고 했습니다. 모과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담 넘어 모과를 따가기에 나머지를 따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기에 썰어 말려 차를 끓이면 좋겠다고 했더니만 전에 말려 놓은 것이 있답니다. 몇 년 전에 아들 친구가 모과를 부대로 가득 담아 준 일이 있습니다. 냄새가 좋아 말린 것을 무더기로 양파망에 담아 거실 한구석에 놓았습니다. 어느 날 보이지 않기에 물었더니 오래되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푸념하려는 눈치가 보이자 자기가 썰어놓은 것은 버리지 않았다며 냉장고에서 한 주머니 꺼내 보였습니다. 무채를 썰듯 곱게 잘랐습니다. 바짝 마른 것이 감자를 기름에 튀긴 것과 비슷한 색이 납니다.
“여보, 목감기에 모과차가 좋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겨울철이 되면 우리 집에서는 둥굴레, 결명자, 녹차를 끓여 마십니다. 맹물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내 말을 들은 아내는 모과를 끓였습니다. 꿀을 한 술 넣어 맛을 보더니 향과 어울린다며 진작 이렇게 할 걸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모과차에 대해 맛과 향을 알고 있습니다. 맛이 약간 떫으면서도 시큼합니다. 물을 자주 마시기에 음료수라면 가리지 않은 편입니다.
이웃집에서 준 모과를 썰었습니다. 갓 나무에서 떤 것이라서인지 싱싱합니다. 모과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붉게 변하고 벌레가 생기기도 합니다. 통째로 저장하기에는 불편함이 따릅니다. 냉장고에 보관해야 할까요. 아직은 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오랫동안 보관하려면 이 방법이 좋을 듯싶습니다.
요즘은 모과를 모으고 싶다면 예전에 비해 수월합니다. 모과나무가 많고 열매 또한 흔해졌습니다. 아파트나 공원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워가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노란 열매가 떨어진 채 며칠 지나면 서서히 보기 흉하게 변색합니다. 예전에는 모과가 귀했습니다. 그러기에 한약재로 쓰였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양약이 나오면서 그 인기는 한물갔습니다.
요즘 모과는 예전의 모과가 아닙니다. 못생긴 게 모과라고 했는데 이웃집 사람이 준 것도 주위의 모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도 모양이 타원형으로 매끄럽습니다. 옛날의 울퉁불퉁한 모습이 아닙니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일까요. 고향마을 기와집 울타리에 있는 모과는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모습도 굴곡이 있고 울퉁불퉁합니다. 이웃이 준 열매도 주위의 것보다 크다고 여겼는데 고향마을의 모과에 비하면 크기가 삼분의 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올해는 지난해에 모과가 덜 열렸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일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꽃이 필 때 비가 자주 오더니 열매가 커갈 무렵 홍수와 태풍이 반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과일이 흉작입니다. 예년에 비해 과일값이 비쌉니다. 도시에 살다 보니 그 피해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뉴스를 통해 농민들의 시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남이 모르는 것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귀룽나무입니다. 고향 버찌의 추억이 있어 가을에도 되살립니다. 하루는 공원을 산책하던 찰나 버찌와 비슷한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벚나무로 착각했습니다. 웬 가을에 버찌가 열린 거야 하는 마음에 나무로 다가갔습니다. 열매는 똑 닮았지만 줄기에 달린 모습이 완연히 다릅니다. 한 뼘 정도의 길이에 줄을 지어 옹기종기 맺혀있습니다. 잘 익은 버찌의 모습입니다. 햇볕에 반짝반짝 윤기가 납니다. 잘 익은 열매의 터진 즙이 손가락을 붉게 물들입니다. 흰 셔츠에 얼룩을 남길까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한 알 한 알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버찌 맛입니다.
그 후로 이곳을 지날 때면 몇 알씩 따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열매들보다 심한 몸살을 앓았나 봅니다. 높은 가지에 몇 알이 보일 뿐입니다. 모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년에 비해 숫자도 적지만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학교 뒤편 울타리, 우리 아파트, 공원의 곳곳에 있는 모과나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면 귀해 보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 거실로 나왔습니다. 종이 위에 널어놓은 모과가 서서히 갈색을 띠며 꾸들꾸들 말라갑니다. 한쪽 한쪽 뒤집었습니다. 겨울철 목을 보호하기 위해 차를 끓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