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69. 슈링크플레이션 20231119

by 지금은

‘이상하다. 뭔가 다른 것 같아.’

맛이 있기에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그릇 비웠습니다. 뚝배기에 나온 음식은 늘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니 여름에도 먹지만 이맘때부터는 내 마음에 쏙 듭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그릇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면 알았다는 듯 후끈한 열기가 코와 입 주변으로 달려듭니다. 국물을 한 숟갈 떴습니다. ‘후’하고 입김을 불어넣습니다. 국물이 입으로 들어가자 따스함이 감돌며 제 갈 길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구멍을 넘었습니다. 곤두박질친 기온에 몸을 움츠렸는데 어깨가 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그릇이 작아진 거야, 음식량이 적어진 거야?’

해장국입니다. 술을 먹지 않는 편이지만 종종 이곳에 들립니다. 다른 곳에 비해 국물이 붉지 않고 칼칼하지도 않습니다. 무덤덤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약간의 자극성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입안이 개운합니다.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다는 마음이 듭니다. 외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같은 음식보다는 다른 맛을 보고 싶어 낯선 곳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머리에 넣었습니다. 공원 뒤편의 감자 옹심이 집, 시장 안 생선구이 집, 둘레길이 끝나는 곳의 보리밥 집을 비롯하여 몇 곳이 됩니다. 하지만 마음의 변화일까 몸의 변화일까, 예전과는 달리 포만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 빠진 게 있습니다.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호떡 노점입니다. 시장 안에는 여러 군데가 있지만 아동복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 앞의 호떡이 마음에 듭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수수밥을 좋아합니다. 수수 호떡이라기에 먹었는데 꼭 내 입맛입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우선 피부로 느끼는 것은 먹을거리입니다. 원재료와 인건비가 올랐다는 말이 돌더니만 슬금슬금 모든 물가가 꿈틀거렸습니다. 봇물이 터지듯 한순간에 뻥 터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7·8천 원이면 먹을 수 있던 음식이 만원을 넘겼습니다. 이런 현실에도 음식값을 올리지 않은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갔는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값을 올리지 않은 대신 음식의 양을 줄였습니다. 착한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망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문한 음식이니 먹었습니다. 계산하는 동안에도 찝찝한 마음 가시지 않습니다. 밖에 나와서도 그 느낌이 잠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호떡이 생각납니다. 뭐 주전부리인 호떡을 가지고 왈가불가할 것이냐고 하겠지만 청계천이 변해온 모습만큼이나, 긴 세월을 눈에 담고 살았습니다. 중학교 때 먹은 호떡은 보름달만큼이나 컸습니다. 내 얼굴을 가릴 정도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손바닥을 가릴 정도도 못됩니다. 간식 정도로 생각하니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 크기가 반의반으로 줄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초코파이입니다. 시중에 나오자마자 국민들의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라면만큼이나 잘 팔립니다. 값 올리는 것을 미루는 대신에 슬금슬금 크기를 줄였습니다. 먹을거리 중에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과자를 살펴보면 개수를 줄이거나 크기를 줄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이 있습니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를 덤으로 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과자 봉지에 들어 있어야 할 과자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대신 충격 보호제 또는 산화방지제로 쓰이는 질소의 양만 늘어났다는 뜻으로 ‘질소 과자’라고도 불렸습니다. 탄생 배경은 1997년 외환위기 때입니다. 이후 식료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제과업체들이 높아진 단가를 상쇄하기 위해 질소 과대포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용어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물건의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꺼려 판매량이 감소할 것입니다. 값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 감자옹심이의 경우입니다. 값은 그대로 놔두고 20개 주던 것을 18개로 줄였습니다. 사람들은 중량의 일부를 줄더라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방법을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한 용어입니다.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크기나 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합니다.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인 피파 맘그렌이 생각해 냈습니다.

뉴스를 보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은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런 현상은 이미 내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모두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만 줄인다면 어떨까요. 기업이 신뢰를 상실하는 건 한순간입니다.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도 적당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복되는 뉴스를 며칠 동안 듣다 보니 속이 허한 느낌이 듭니다.

‘제값 내고 음식을 제대로 먹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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